<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별 회의 >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제13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별 회의 >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제13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기업 세 곳 중 한 곳은 근로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면 해고 등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업의 30%는 직원 가족을 우선·특별 채용하는 ‘고용 세습’이 이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 2월12일자 A1, 3면 참조

노조에 휘둘리는 기업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6월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단체협약 실태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조사는 복수노조제도 도입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단체협약 내용 변화 등을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 2013년 말 기준으로 유효한 단체협약 727개(기업)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상당수 회사의 단체협약에 회사가 근로자를 전근시키려면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노조가 기업의 인사·경영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전체 조사 대상의 24.9%인 181곳에서는 근로자의 전근 등 전환배치 시 노조의 동의 또는 합의 절차를 거치도록 단체협약에 명시하고 있고, 248곳(34.1%)은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징계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도록 규정한 사업장은 87곳(12%)이었고, 이 가운데 가부(可否) 동수일 경우 부결로 규정한 경우도 20곳(2.8%)에 달했다.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는 사실상 징계·해고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경영상 이유로 인한 정리해고 때 노조의 동의(합의)를 받도록 한 기업은 125곳(17.2%)이었고, 협의하도록 한 사업장은 164곳(22.6%)이었다.

기업의 분할, 합병, 양도, 휴·폐업 시 노조의 동의(합의) 규정을 둔 사업장은 79곳(10.9%), 협의 규정이 있는 사업장은 145곳(19.9%)이었다.
노조에 휘둘리는 기업들
노조 동의없인 전환배치도 못해…201개 기업은 '일자리 세습'

노조 가입을 고용 조건으로 하는, 즉 취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동으로 노조에 가입되는 유니언숍 규정이 있는 경우는 219곳(30.1%)이었다. 복수노조 허용 전인 2009년(46.1%)보다 감소했지만 기업 세 곳 중 한 곳에서는 여전히 이 규정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356개 사업장(49%)에서는 중간관리자(과장급) 이상은 비노조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쟁의행위 종료 후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둔 사업장은 372곳(51%)이었다.

권영순 고용부 노동정책실장은 “인사·경영권에 대한 노조의 참여 비율은 다소 줄었으나 전환배치나 징계 시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의 규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인사·경영권을 단체협약으로 과도하게 제한하다 보면 경영상 신속한 결정과 인력의 효율적 활용을 어렵게 해 기업 생존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세습으로 ‘현대판 음서제’라는 지적을 받는 직원 가족에 대한 채용 특혜도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년퇴직자의 배우자나 자녀에 대해 우선 채용 또는 특별 채용 규정을 둔 기업은 221곳으로 전체 조사 대상의 30.4%였다. 우선 채용은 201곳, 특별 채용은 20곳이었다. 특히 업무상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퇴직자 가족의 생계 보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년퇴직자나 정리해고자 가족을 우선 채용하게 하는 사업장이 156곳이었다. 심지어 조합원이나 장기근속자 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사업장도 13곳 있다.

대표적인 고용 세습 사례로 A타이어의 단체협약에는 정년퇴직자 직계가족에 대한 우선 채용 조항이 명시돼 있고, B자동차는 정년퇴직 후 1년 이내에 근로자의 직계비속을 우선 채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C자동차는 25년 이상 장기근속 근로자 자녀 중 한 명을 우선 채용할 수 있도록 했고, D공조는 업무상 재해가 아닌 업무 외적 부상이나 질병으로 퇴직한 경우에도 직원 가족을 특별 채용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E기업의 경우에는 ‘단체협약에 규정된 사유로 퇴직한 자의 자녀에 대해 면접 시 5% 가산점을 부여한다’고 명시돼 있다.

임금체계와 관련해서는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규정이 있는 경우는 174곳(23.9%)이었다.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항목은 기본급 외에 통상수당, 고정상여금, 연장근로수당, 노사가 합의하는 임금 등이다. 연봉제 규정을 둔 사업장은 36곳(5%)이었으나 이 중 능력 성과 업적 평가를 통해 연봉을 결정하는 사업장은 8곳(1.1%)에 불과했다.

권 실장은 “조합원 가족 우선 채용 등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떨어지거나 인력 운용의 경직성을 담고 있는 규정은 개선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임단협 체결 과정에서 노사가 불합리한 규정을 바꿔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위법한 협약은 시정명령 등을 통해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 유니언숍

union shop. 근로자가 고용되면 일정 기간 내에 반드시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하는 노사 간 단체협약. 근로자에게 조합 가입을 강제하고 조합을 탈퇴한 근로자에 대해서는 회사에 해고 의무를 지움으로써 노조 조직을 강화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