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 기자와 독자 사이 '홍보맨'의 세계
“국어가 어렵다는 것을 보도자료 쓰면서 처음 알았어요.” 법학도 출신인 삼양그룹 홍보팀 6년차 안승회 과장은 입사 초 홍보팀장의 무자비한 빨간펜을 벗어나고자 ‘신문기사 베끼기’ 하드트레이닝으로 지금은 팀장의 확인 없이 바로 언론사에 배포할 정도의 보도자료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JOB] 기자와 독자 사이 '홍보맨'의 세계
패션 유통업 특성상 1주일에 보통 4건의 보도자료를 쓴다는 이영미 금강제화 과장은 “맞춤법·띄어쓰기 교열까지 할 수 있어야 진정한 홍보맨”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안 과장은 회사 이름에 얽힌 홍보맨의 애환도 들려줬다. “삼양그룹은 올해로 91년 되는 장수기업인데, 라면 만드는 회사로 아는 사람이 많아요. 라면 회사가 아니라 화학·식품·의약바이오 사업을 통해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회사임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 과장도 “금강제화의 정확한 사명은 ‘(주)금강’”이라며 “상을 받을 땐 법인명을 써야 해서 무슨 회사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홍보 직무’ 인터뷰는 지난 15일 삼양그룹이 운영하는 샐러드바 세븐스프링스 청계천점에서 진행했다. 이날 참석한 5인의 홍보맨은 삼성전자 휴대폰을 지녔고, 현대카드 이용자는 3명, 금강제화 구두를 신은 사람은 2명이었다. 이들 중 언론홍보학 전공자는 한 명뿐이었다. 현대카드와 기업은행 홍보팀은 모두 인문계 출신이었고, 홍보대행사는 별도로 두고 있지 않았다. 이들로부터 ‘홍보 A~Z’를 들어봤다.

▶대부분 과장인데, 언제 과장을 다나.

▷정재웅 기업은행 과장=기업은행은 입사 6~7년차면 과장을 단다.

▷안승회 삼양그룹 과장=입사 5년차인 지난해 과장이 됐다.

▷이용욱 현대카드 과장=만 8년이 지나면 과장 승진 대상이다.

▷이영미 금강제화 과장=금강제화는 10년차부터 과장 승진을 할 수 있다.

▷김용호 삼성전자 대리=삼성전자는 입사 9년차에 과장 진급 대상이 된다.
보도자료 작성과 화보촬영에 광고업무까지 주요기업 홍보관계자 5명이 말하는 ‘홍보맨 24시’를 들어봤다. 정재웅 과장(왼쪽부터), 김용호 대리, 이영미 과장, 이용욱 과장, 안승회 과장이 인터뷰를 마친 뒤 서울 청계천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보도자료 작성과 화보촬영에 광고업무까지 주요기업 홍보관계자 5명이 말하는 ‘홍보맨 24시’를 들어봤다. 정재웅 과장(왼쪽부터), 김용호 대리, 이영미 과장, 이용욱 과장, 안승회 과장이 인터뷰를 마친 뒤 서울 청계천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어떻게 홍보맨이 됐나.

▷안 과장=고시 공부를 했던 법학도다. 졸업 후 해병대 장교로 3년4개월간 복무했기에 홍보의 ‘홍’자도 몰랐다. 신입연수 중 홍보팀장의 강의를 듣고 매력을 느꼈다.

▷이영미 과장=공대 여학생이었으나 언론홍보를 복수전공했다. 대학생 연합광고동아리, PR아카데미, 브랜드 모니터 요원 등 홍보 관련 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았다. 홍보대행사 입사 후 절친한 기자의 추천으로 금강제화에 합류했다.

▷이용욱 과장=국문과 졸업 후 홍보대행사 경험을 쌓은 뒤 다음커뮤니케이션을 거쳐 현대카드·캐피탈에 경력으로 입사했다. 현대카드는 충원 수요가 생기면 ‘커리어마켓’ 제도를 통해 1차로 내부에서 충원한다.

▷정 과장=영업점 2곳과 인사부 근무를 통해 홍보부에서 언론 공보를 맡고 있다. 신입 홍보맨을 뽑을 땐 인턴기자, 아나운서, 학보사 등의 커리어가 크게 작용한다. 대부분 순환보직제이지만 홍보는 거의 ‘말뚝’을 박는다.

▷김 대리=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인사담당자로서 ‘삼성 SW멤버십’ 캠퍼스 리크루팅을 3년간 했다. 사내공모를 통해 홍보팀에 지원했다. 사내커뮤니케이션을 4년간 맡은 뒤 올해 방송언론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은 2011년부터 홍보팀의 명칭을 커뮤니케이션팀으로 바꿨다.

▶홍보 업무는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

▷김 대리=공감 능력이다. 공감하면 역지사지를 통해 상대를 배려하게 된다.

▷이영미 과장=패션홍보는 무엇보다 센스다. 기자가 뭔가 요청할 때 그 의미를 재빨리 캐치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특히 패션은 스타마케팅도 해야 하기에 ‘될 성싶은 스타’를 볼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하다.

▷정 과장=최고경영자(CEO) 마인드다. 다양한 부서의 일들이 ‘하나의 입’을 통해 나간다. 각 부서의 업무를 통합적으로 알고 정제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용욱 과장=열정과 냉정, 두 가지를 갖췄으면 한다. 회사를 사랑하지 않으면 일하기 힘들다. 자신이 좋아해야 하지만 단순히 좋아하기만 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강요가 된다. 이때 기자나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설득하기 위해 냉정이 요구된다.(이 말에 모두 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안 과장=회사에 대한 로열티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정신과 문화를 사랑하고, 그 조직의 일원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갖는 것이 홍보의 시작이다.

▶홍보팀은 어떻게 뽑나.

▷이영미 과장=경력직은 소개와 인맥을 통한 추천채용이 많다. 신입은 3개월 인턴을 거치는 동안 매장 등 현장 경험을 쌓은 뒤 부서를 지원하고, 각 팀의 팀장 면접을 거쳐 최종 결정된다.

▷김 과장=삼성그룹 신입연수를 가면 활달하고 친화력 있는 후배들이 눈에 띈다.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 오는 것 같다.

▷이용욱 과장=현대카드 기획직군은 공채로 일괄채용한다. 신입연수 말미에 ‘잡페어’가 열린다. 잡페어를 통해 신입사원의 80%가 자신이 원하는 직무에 배치된다.

▶홍보가 자녀에게 추천하고 싶은 업무인가.

▷이영미 과장=내 자녀가 성향이 맞다면 추천하고 싶다. 사람 만나는 걸 힘들어하면 ‘비추’다.

▷이용욱 과장=괜찮은 직업이다. 배울 것, 얻을 것이 많지만 힘든 것도 사실이다.

▷정 과장=홍보 업무는 만만치 않다. 회사를 대표해 나가는 공식적인 것이기에 ‘나의 말 한마디’가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크게 되고 싶다면 홍보 업무를 꼭 추천한다.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가 적합하다.

▶‘말 한마디’로 뒷감당 못한 사례가 있었나.

▷이용욱 과장=신문은 초판을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지만 방송은 한번 나가면 바꿀 수 없다. 과거에 녹취가 안 좋게 들어간 부분이 나왔다. 부정적인 단어 하나가 자막에 떴는데, 얼마나 크게 보이던지…. 눈앞이 깜깜했다. 그후로는 말을 아끼게 됐다. 상대편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것은 홍보맨들 사이에선 금기다.

▷정 과장=맞다. 홍보맨은 말을 잘하는 것만큼이나 말을 가려서 아낄 수 있어야 한다.

▶위기관리가 최근 이슈다.

▷이용욱 과장=위기관리의 핵심은 진정성이다. 사과를 한다면 진심을 담아야 하고 억지로 해선 안 된다. 누가 사과해야 하나 등의 기술적인 것은 그 다음 문제다.

▷정 과장=최근 사태를 보면서 평판 리스크가 다시 부각됐다. 홍보팀의 중요성이 커진 것을 느낀다.

▶가장 많이 하는 홍보업무는 뭔가.

▷이용욱 과장=보도자료, 기획기사 등 언론 홍보를 위한 콘텐츠 작업과 기획안을 만드는 것이다.

▷김 대리=언론담당자라면 기자 문의와 팩트 확인, 자료 요청에 대한 회신이 가장 많다.

▷정 과장=보도자료 작성과 기업은행 홍보사업 전파다.

▷안 과장=기업간거래(B2B) 업체라는 특성상 브랜드, 제품 홍보보다는 기업 이미지 제고에 더 노력하고 있다.

▷이영미 과장=요즘같이 시즌이 시작되는 시기에는 제품 홍보가 우선이다. 언론 홍보를 위한 기사 작성과 콘텐츠를 생성하기 위한 화보 촬영, 온라인 홍보, 광고 등의 일정 수립이 주를 이룬다.

▶홍보맨으로서 고충도 많을 것 같다.

▷김 대리=홍보는 회사 제품, 서비스뿐 아니라 기술, 법률, 환경안전, 트렌드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기 때문에 늘 공부해야 하는 분야다.

▷안 과장=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부정적인 기사에 항상 조마조마해야 하고 휴일에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이영미 과장=소비재 홍보는 제품을 옮기는 등 힘쓰는 일부터 화보 촬영, 저녁 기자 미팅까지 다양한 업무를 해야 하고 전날 몇 시에 끝나든 정시 출근해야 한다. 실시간 기사 검색은 필수다.

▶홍보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

▷정 과장=출근이 빠르다. 체력을 기르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이영미 과장=전체를 보는 시각을 키웠으면 좋겠다. 가급적 종이신문을 많이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안 과장=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고 돌아다닌 만큼 좋은 기획을 할 수 있게 된다.

▷김 대리=1인 미디어시대다. 다양한 미디어를 운영하면서 글 쓰는 연습을 해볼 것을 권한다.

▷이용욱 과장=스펙이나 학점보다 ‘이것 하나만은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았으면 한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