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학기금 현장리포트] 美대학기금 경쟁력이 높은 비결 '3G'
미국 대학기금들이 추구하는 연간 목표수익률은 ‘교육물가상승률+알파(α)’다. 수치로 따지면 연 8~10% 정도 된다.

교육물가상승률의 기초가 되는 교육물가지수에는 일반적인 물가상승률은 물론 교수 월급과 장학금, 기자재 구입비, 대학 재정에 들어가는 돈 등이 포함된다. 한완선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매년 대학이 감당해야 하는 교육 물가는 장학금과 시설 투자 등을 감안할 때 일반적인 물가보다 훨씬 큰 폭으로 오르게 마련”이라고 했다.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본적인 운용 목표로 잡는 이유다. 자금을 은행에 넣어두고 원금 보전을 최선의 목표로 삼는 대부분의 한국 대학과는 인식의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교육물가상승률을 넘겨라

나브 나베카 미 컬럼비아대 기금(CIMC) 대표는 “교육물가상승률을 뛰어넘는 수익을 내기 위한 전제조건은 3G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3G란 명확한 운용 목표(Goal), 투자운용 부서의 독립된 지배구조(Governance), 그리고 지속적인 기금(Giving) 수입을 말한다.

명확한 목표는 자산 배분의 다양화로 이어진다. 전미대학사무직연합(NACUBO)에 따르면 소속 835개 대학은 2013 회계연도에 전체 자산의 53%를 대체투자(국내외 사모펀드, 헤지펀드, 벤처캐피털, 부동산, 에너지 및 자원 등 상품, 부실채권 등)에 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형 대학 기금일수록 주식 채권 등 전통 자산 투자 비중이 높다. 기금 규모 2500만달러 이하 131개 대학의 주식, 채권, 대체투자 비중은 각각 57%, 26%, 11%다. 현금 등 단기금융 상품 비중은 6%에 불과하다. 조너선 에릭슨 프린스턴대 기금(PRINCO) 수석 운용역은 “연 10%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자산 배분 전략이 가장 중요하다”며 “20명 안팎의 대학기금 투자팀은 세계 각국의 유능한 투자회사를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위기 때 CIO 바꾸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대학 기금의 첫 번째 성공 요건은 투자팀의 ‘독립’이다. 하버드대는 이를 위해 1974년 자산관리회사인 하버드매니지먼트컴퍼니(HMC)를 외부에 별도로 만들었다. 컬럼비아대도 CIMC라는 별도 회사를 설립했다. 나베카 CIMC 대표는 “대부분 투자 결정은 기금운용팀이 직접 한다”며 “CIMC 대표와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비롯해 대학의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운영책임자(COO), 동문 출신 외부 전문가 등 12명으로 구성된 CIMC 이사회는 큰 틀의 자산 배분만 결정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주립대 등 공립대학은 기금 운용 부서를 적어도 기능적으로는 독립시킨다. 마이클 스미스 전 플로리다대 CIO는 “2000년 중반까지만 해도 플로리다대는 공립대 특유의 관료주의로 기금 수익률이 좋지 않았다”며 “사립대처럼 기금운용팀을 별도 회사로 만들 수 없었지만 대학 이사회와 투자 협정(investment agreement)을 맺고 독립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한국경제신문 인재포럼 설문에서 한국의 대학총장 55%는 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으로 ‘기금운용위원회 설치’를 꼽았다. 독립시킬 운용위원회조차 미비돼 있다는 얘기다.

기부금 ‘특공대’ 전 세계 마케팅

미국 대학기금의 경쟁력이 높아진 또 하나의 비결은 기부금 수입의 꾸준한 증가다. 대학 예산, 건물 신축, 장학금, 연구지원 등 특정 목적이 정해진 기금 외에 기금으로 유입되는 비목적성 기금의 규모가 큰 것이 한국과 다르다.

하버드대만 해도 2013 회계연도에 7억9226만달러의 기부금 수입을 올렸다. 이 중 5억달러는 대학 예산 등으로 쓰이고, 비목적성 기부금 3억달러는 기금으로 적립됐다. 자산 규모가 커진 만큼 분산투자를 통해 운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대형 사립대 관계자는 “국내 대학 기부금은 90% 이상이 목적성 기금이고, ‘좋은 데 써 주세요’라고 보내온 비목적성 기금조차도 예금으로 잠들어 있거나 ‘눈먼 돈’으로 간주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기부금 수입을 늘리기 위해 미국 주요 대학은 ‘특공대’라고 해도 좋을 만한 별도 기부금 모집 부서를 두고 있다. 컬럼비아대, 펜실베이니아대의 기금 모집 인력은 100여명이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은퇴연구소장은 “얼마전 미 워싱턴대 기부금 모집 담당자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미래에셋에 다녀간 일이 있다”며 “공식적으로 인정하진 않지만 기부할 경우 자녀의 대학 입학에 서류상이라도 혜택을 주는 레거시(legacy) 규칙이 미국 사립대가 기부금을 모집하는 주요 전략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총장 개인 역량에 의존하는 일이 흔하다. 송자 전 명지대 총장,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등 명망가를 영입해 기부금 모집을 일임하는 식이다.

뉴욕=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