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실패해도 재도전하면…주홍글씨 지워준다
멸치에서 칼슘을 추출해 판매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민우 씨는 2011년 11월 창업에 나선 이후 단 한 번도 은행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출을 해줄 것 같던 은행원들은 신용정보를 조회한 뒤 고개를 저었다. 법원에서 개인회생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2000년부터 정수기 필터 제조사업을 하다가 2007년 부도를 냈다.

이후 2010년 법원에서 개인회생이 받아들여져 한 달에 40만원씩 5년째 갚아오고 있다. 김씨는 “대출을 받으려고 가보지 않은 금융회사가 없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며 “정부에서 재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돈까지 빌려줬는데, 이렇게까지 박대를 하나 싶어 정말 속상하다”고 말했다.

○지원 받아도 은행 이용 못해

금융회사들의 홀대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재기를 위한 창업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재창업자금 덕분이다. 재창업자금은 사업에 실패한 경영자 가운데 그 사업이 사치향락업종 등이 아니고 고의부도나 횡령 등 부도덕한 사유로 부도를 내지 않은 사람에게 빌려주는 돈이다. 김씨는 1억원을 연 8%로 빌려 회사를 차릴 수 있었다. 김씨는 “개인회생자라는 꼬리표가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다 보니 은행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개인 신용카드와 회사 법인카드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금융권과 담을 쌓고 지내온 김씨지만 이르면 다음달부터 금융회사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원회가 김씨처럼 정부 지원을 받는 재기 기업인을 위해 개인회생이나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신용회복(개인워크아웃) 같은 부정적 신용정보를 지워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창업 실패해도 재도전하면…주홍글씨 지워준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8일 “정부가 재창업자금을 지원할 때는 사업성뿐만 아니라 기술성과 도덕성, 상환 능력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며 “이 돈으로 창업을 했다면 부정적 신용정보를 삭제해주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금융정보와 신용정보는 정보집중기관인 은행연합회에 쌓인다. 개인회생과 개인워크아웃은 각각 5년과 2년이 지나야 소멸된다. 이를 빨리 삭제해주겠다는 게 금융위의 방침이다.

○부정적 신용정보 빨리 삭제

은행연합회 데이터베이스에서 개인회생과 개인워크아웃 정보가 사라지면 은행이나 카드사들은 현재의 신용상태만 보고 대출해주거나 카드를 발급하게 된다.

나이스평가정보,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같은 개인신용평가회사와 서울보증보험 같은 보증회사도 ‘부정적 신용정보’를 알 수 없다. 부정적 신용정보가 삭제되면 신용등급도 올라간다. 재기 기업인으로선 대출도 받고 카드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공공입찰 사업을 주로 하는 재기 기업인들은 보증회사가 개인회생 등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을 크게 반기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공공기관들은 사업에 참여시키기 전에 보증회사의 이행보증서를 요구하는데 보증회사들은 기업 대표가 개인회생 등을 하고 있으면 보증서 발급을 꺼려왔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창업자금은 중진공 이외에 신용회복위원회에서도 지원한다. 신복위 산하 재창업지원위원회는 재창업 의지가 확고하고 사업계획이 충실한 사람을 선발해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을 이용하거나 중진공의 직접 대출로 최대 30억원까지 지원해준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