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우 묘역 찾은 노병들 >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은 육군사관학교 21기(1961년 입교) 동기생들이 전우의 묘역을 찾아 경례하고 있다./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전우 묘역 찾은 노병들 >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은 육군사관학교 21기(1961년 입교) 동기생들이 전우의 묘역을 찾아 경례하고 있다./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독립유공자 고(故) 장기영 선생의 손녀 장원순 씨(79)는 강원 춘천시 사북면에서 남편과 어렵게 살고 있다. 수입은 국가보훈처에서 나오는 보조금 35만원이 전부다. 식비 등 필수 비용만 겨우 해결하는 정도여서 저축은 꿈도 못 꾼다. 장씨는 “정부가 친일 재산을 환수해 독립유공자 후손을 돕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혜택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친일 재산을 국가가 환수해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을 돕도록 하는 내용의 ‘친일재산환수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햇수로 10년째다. 정부는 지금까지 친일파 후손을 상대로 96건의 소송을 벌여 종결된 92건 중 89건(96.7%)에서 승소했다. 이 법에 따르면 정부는 환수 재산을 민간에 매각해 기금을 만든 뒤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을 도와야 한다. 그러나 높은 승소율과 달리 실제로 이들이 받은 혜택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親日재산 '낮잠'…빈곤에 지친 독립유공자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국가에 귀속된 친일 재산 땅 876만㎡(반환분 제외) 가운데 매각에 성공한 재산은 120만2000㎡(13.7%)에 불과했다. 공시지가 기준으로 842억5400만원어치 가운데 263억7200만원어치(31.2%·실제 매각액 400억1000만원)만 현금화했다. 나머지 귀속 재산은 입찰에서 감정평가액이 공시지가보다 낮게 나와도 유찰되는 경우가 많아 언제 팔릴지 불확실하다. 그나마 현금화한 돈도 연기금 투자풀에 위탁한 뒤 방치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매각 성공률이 낮은 건 환수 재산 가운데 잘 팔리지 않는 임야가 많기 때문”이라며 “매물이 약 33만~66만㎡ 규모여서 관리가 어렵고 가격도 비싸 잘 팔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매각을 담당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관계자는 “팔릴 만한 땅도 전에 친일파 후손에게 임차료를 주고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도 그대로 살고 있어 내보내고 매각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독립유공자와 후손’의 범위는 손자·손녀까지다. 이들 손자·손녀의 90% 이상이 이미 50대를 넘은 고령인 데다 빈곤을 대물림해 온 경우도 많은 만큼 신속히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캠코 관계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대규모 사업을 하면서 사들이기 전에는 팔기 어려운 땅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들 땅을 우선 매입해 그 자금으로 독립유공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장완익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환수 재산은 신속하게 처분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대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 기념사업을 하는 광복회 관계자는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300여만명에 이르지만 유공자 지원을 받는 이들은 생존자와 유족을 합해도 1만명이 안 된다”며 “환수재산 매각으로 신속히 기금을 증액해 지원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