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급형(호봉제) 임금체계는 과거 성장기에는 적합한 모델이었지만, 지금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불리하다.”

“정부가 왜 먼저 나서서 민간기업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내놓나. 호봉제인 공무원 조직부터 임금체계를 개편하라.”

한국노동법학회,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한국노동경제학회가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 후원으로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4년 춘계공동학술대회 ‘임금체계 개편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선 호봉제냐 직무성과급제냐를 놓고 경제계와 노동계가 팽팽하게 맞섰다. 이날 토론회는 정부가 지난 19일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제시한 뒤 노동전문 학자들은 물론 노동계, 경영계, 정부, 시민단체 등 노사관계 전문가들이 자리를 함께한 첫 논의의 장이었다.

첫 번째 주제 발표에 나선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저임금 노동시장은 임금체계가 아예 없고, 최저임금이 사실상 유일한 임금결정 기제”라며 “호봉제든 직능급이든 나름의 임금체계를 갖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보다는 중소 영세업체 비정규직부터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정진호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한국 근로자의 초임 대비 20~30년차 근로자 임금은 3.13배로 독일(1.91), 영국(1.56)은 물론 2.41배인 일본에 비해 너무 높다”며 “통상임금 범위 확대와 정년 60세라는 환경 변화에 부합해 새로운 임금체계로의 개편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금정책 선진화 모델’을 들고 나왔다. 이 교수는 “임금체계 논의는 목표가 ‘고용률 70% 달성’인지 ‘기업의 지속 성장’인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며 “기업 성장을 위해서는 통상임금 항목에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포함된다면 약 12%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 기업이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임금 논의에서 1임금지급기와 재직자 요건 등 조건을 다는 것은 대법원 판결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논의의 큰 방향은 근로자 간 소득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해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 뜨거운 지정토론이 이어졌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임금 협상은 노사 간 과제인데 정부가 민간기업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내놓는 것은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의 티를 지적하는 꼴”이라며 “호봉제인 정부부터 임금체계를 바꾸라”고 주장했다. 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도 “임금체계 개편이 그렇게 좋다고들 하는데 여기 있는 교수와 공무원들이 먼저 하면 될 것”이라며 “모름지기 설득의 가장 좋은 방법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55세 이상 근로자의 생산성은 34세 이하 근로자의 60% 수준”이라며 “호봉제는 기업 입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되고, 근로자 입장에서도 조기은퇴 압박과 신규 일자리가 부족해지는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 전무는 “호봉제를 유지하자는 주장의 근거로 50대 이후 자녀 교육비, 주택비용 부담 등이 크다고 하는데 이를 임금으로 해결하는 것은 무리”라며 “국가 정책 차원에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