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적 의미 있지만 학원 규제 미흡…사교육 수요 외려 늘수도"

국회가 선행교육과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우리나라 교육의 오랜 숙제인 사교육 문제를 풀기 위한 특단의 조처로 풀이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선행교육·선행출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상황에서 국회가 이른바 '선행학습 금지법'을 통과시키며 보조를 맞춘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선행교육을 막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봤지만, 학원에 대한 규제 조항은 빠진 탓에 오히려 선행학습을 하려는 학생이 학원으로 빠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교 선행학습 금지…학원은 광고 규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18일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공교육 정상화 촉진·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선행학습 금지법)은 공교육에서의 선행교육·평가 금지를 골자로 한다.

특별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지필고사, 수행평가 등 내신 시험이나 상급학교 진학 시험에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문제가 나오면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고 공교육은 파행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깔렸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교육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학생과 학부모, 일반 국민 등 9천86명 대상 온라인 설문 결과를 보면 70.7%가 '자신이나 자녀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사교육을 받는 이유로는 19.4%가 '선행학습을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학원으로 가는 학생을 막으려다 보니 학교에서도 선행교육이 공공연히 이뤄지는 실정이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이 지난해 7월 전국 156개 초·중·고교 교사 1천398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79.4%가 '학원의 학원화 실태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정규수업에서 선행교육을 한 적이 있느냐'는 문항에는 11.3%가 '그렇다'고 밝혔다.

결국 어려운 시험 문제 탓에 학생들은 학원이나 과외를 찾고, 학교는 이런 학생들의 수요를 맞추려고 또다시 선행교육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정치권은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요인부터 잡아야 한다는 판단 아래 지난해 4월 16일 민주당 이상민 의원과 30일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각기 법안을 제출했고 10개월 만에 합의를 끌어냈다.

강 의원은 법 통과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선행학습 금지법이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고등학교에서 예비 고1을 불러서 미리 공부를 시키는 행위 등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별법은 이달 중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이며 이르면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사교육 경감 효과에는 회의적 시각 '다수'
교육계는 선행교육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처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특별법의 의미를 찾았다.

그러나 실제로 사교육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는 회의적 시각이 우세했다.

학교의 선행교육은 엄격히 금지되지만 학원에 대한 규제는 선행교육을 광고·선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그친 탓에 선행학습을 하려는 학생들이 오히려 학원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학원 역시 규제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이번 특별법에서는 학원 관련 조항이 '학원, 교습소 또는 개인과외교습자는 선행교육을 광고하거나 선전해서는 안 된다'로 크게 후퇴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김무성 대변인은 "수능 체제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에서의 선행교육을 금지하면 불안해진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원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교사로서도 시험 문제를 내는 권한이 크게 위축돼 지식을 묻는 수준에서 그치게 될 것"이라며 "사교육을 줄이려면 대입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원가도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사교육을 받는 주된 목적은 선행학습을 하든 안 하든 다른 학생보다 좀 더 우수한 성적을 받으려는 것"이라며 "단순히 선행교육 광고를 못한다고 해서 학생이 적게 오진 않는다"고 말했다.

선행학습 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앞장섰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안상진 부소장은 "학원에 대한 규제가 미흡해 특별법 제정으로 학원업계가 크게 위축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예측했다.

안 부소장은 "그러나 사교육의 문제를 인식했다는데 상징적 의미가 있으며 학원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신호를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추가 개정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e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