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합정동 지하철 6호선 합정역 3번 출구 인근 주택가. 카페가 늘어서 있는 거리 한쪽에 ‘바라봄사진관’이라는 간판이 걸린 곳이 눈에 띄었다. 현관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다. 외국계 정보기술(IT) 기업 지사장을 지낸 나종민 씨(50)가 운영하는 국내 최초 장애인 전용 사진관이다. 사진 촬영이 취미인 나씨는 장애인들이 마음놓고 가족사진을 찍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을 알고 퇴사 후 사진관을 열었다. 지난해 1월 돈암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가 지난 13일 이 곳으로 옮겼다. 사진관 설립 자금은 온라인 소셜 펀딩으로 모았다. 나씨는 “온라인 게시판에 사연을 올리자 개미 스폰서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며 “두 차례에 걸쳐 500만원을 모아 휠체어 경사로도 만들었다”고 뿌듯해했다.

소셜 펀딩 방식으로 사진관 운영경비를 기부받은 ‘바라봄사진관’의 나종민 대표가 20일 오전 사진관을 찾은 손님들의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홍선표 기자
소셜 펀딩 방식으로 사진관 운영경비를 기부받은 ‘바라봄사진관’의 나종민 대표가 20일 오전 사진관을 찾은 손님들의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홍선표 기자

○재능 기부와 맞춤형 기부의 결합

국내 기부 문화가 바뀌고 있다. 현금이나 현물 위주의 일회성 기부 위주에서 개인과 기업들의 재능 기부로 변하고 있다. 재능 기부는 개인이나 기업의 노하우 및 기술을 활용해 특화된 분야에서 전문성을 살린 기부를 뜻한다. 모금단체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기부하던 방식도 최근엔 원하는 대상자를 선택해 후원하는 ‘맞춤형 기부’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능 기부와 맞춤형 기부가 결합하면 기부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씨가 운영하는 바라봄사진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예전엔 대규모 금액을 모금단체에 기부하던 것과 달리 기업들의 재능 기부도 최근 몇 년 새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SDS는 정보기술(IT) 업체의 특성을 살려 140여명의 직원들이 서울 천안 수원 등 6개 지역의 어려운 환경에 있는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학습방법과 IT 교육을 주 1회 가르치고 있다. 매일유업은 연말을 맞아 선천성 대사 이상을 앓고있는 중국동포 환아 2명에게 자사의 제조 노하우와 생산 인프라를 활용해 만든 특수 유아식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독도 광고로도 유명한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이 기부하는 재능이 투명하게 쓰이는지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많다”며 “맞춤형 기부는 기부한 재능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SNS 발달로 기부도 활성화

기업의 고액기부뿐 아니라 직장인 정기기부 등 개인 소액기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국내 기부문화의 또 다른 변화상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2011년 개인 기부액은 582억원에서 지난해 727억원으로 24.9% 늘어났다. 선년규 공동모금회 대외협력본부 부장은 “기부 문화의 기반이 탄탄해지려면 개인 소액기부 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해외 선진국처럼 직장인 정기기부 등 소액기부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공인모금전문가(CFRE)인 비케이 안 한국기부문화연구소장은 “한국의 기부문화는 역사가 짧은 데다 해외 구호단체를 통한 대규모 지원 등을 기부로 오해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며 “선진국처럼 재능·맞춤형·소액 기부로 바뀌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소액기부 활성화에는 한국의 선진 IT도 한몫하고 있다. 서 교수는 “올 들어 바뀐 기부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소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사례가 많아졌다는 것”이라며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소셜 펀딩에 불을 지폈다”고 분석했다. 과거 기부를 하려면 모금단체를 찾아가거나 은행에 가서 계좌로 보내야 했지만 이제는 손가락만으로 손쉽게 기부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소셜 크라우드 펀딩의 대부분은 1000원가량의 소액기부여서 부담 갖지 않고 기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안 소장은 “과거엔 기부라고 하면 부자들이 사회에 돈을 내고 환원하는 것에만 국한됐다”며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기부할 수 있는 SNS 같은 플랫폼이 마련되면서 기부문화도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선표/강경민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