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 운항 9일째인 25일 북극해의 첫 번째 바다 바렌츠해 해상. 스테나폴라리스 너머 먹구름 사이로 햇빛이 바다로 쏟아지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북극항로 운항 9일째인 25일 북극해의 첫 번째 바다 바렌츠해 해상. 스테나폴라리스 너머 먹구름 사이로 햇빛이 바다로 쏟아지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1824년 ‘난파된 희망’이란 그림을 그렸다. 사상 처음으로 북극해를 묘사한 그의 작품은 우울했다. 빙하와 충돌한 배가 산산조각 난 장면이었다. 당시 사람들의 북극해에 대한 두려움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북극항로 항해 9일째인 지난 25일. 북위 70도를 넘어서 북극항로에 본격 진입했지만 아직 빙하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 최초로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 16일 핀란드 우스트루가항을 출발한 스테나폴라리스호 앞을 거센 바람이 가로막을 뿐이다.

"여기는 황금해역"…수심 1200m속 자원 전쟁중
일부 한국인 탑승자는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누워 지내기 시작했다. 경력 20년의 항해사 주벨라 안테는 “북극해의 날씨는 변덕스럽지만 유빙이 없어 이 정도면 매우 순조로운 항해”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 노르웨이의 최북단 키르키네스항의 불빛을 등지고 보트 한 대가 다가왔다. 러시아의 아이스파일럿(ice pilot·빙하항로 안내인)이 보트에서 줄사다리를 타고 스테나폴라리스로 올라왔다.

러시아 북극항로국(NSRA) 규정에 따라 러시아 북극항로를 지나는 모든 선박은 아이스파일럿을 태워 그들이 제시하는 항로를 따라야 한다. 쇄빙선 항해사 경력만 22년이 넘는 아이스파일럿 세르게이 니콜렌코(42)는 “북동항로에는 유전과 가스전이 많기 때문에 작은 사고가 큰 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아이스파일럿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테나폴라리스호는 이날 밤 북극해의 첫 관문격인 바렌츠해에 들어섰다. 남청도 해양대 교수는 “드디어 우리가 미래에 에너지를 공급할 ‘황금벨트’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극권의 석유와 가스는 전 세계 미개발 자원의 22%를 차지한다”며 “바렌츠해의 시토크만에 매장된 천연가스만 따져도 독일이 5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말했다.

바렌츠해와 이어진 카라해에서도 1조㎥ 규모의 천연가스를 개발하기 위한 ‘야말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미국 광물관리국에 따르면 알래스카 인근 추크치해부터 캐나다 북부로 이어지는 북서항로 지역에도 석유 150억배럴, 천연가스 2조㎥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북극해 자원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러시아다. 수출의 70%(2011년 기준), 재정 수입의 절반을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어 새로운 광구 개발에 적극적이다. 남 교수는 “자원 개발이 절실한 러시아 주도의 북동항로 벨트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서항로 벨트의 대결 양상으로 북극해의 자원 개발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빙하가 녹으면서 평균 수심 1205m 바닷물 아래에 묻혀 있는 자원개발을 놓고 열강들의 경쟁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9일 밤 강풍이 잦아들었다. 북위 75도로 접근 중인 스테나폴라리스호는 곧 쇄빙선을 만날 예정이다. 프리드리히가 그렸던 공포의 빙하가 조만간 출현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때부터는 쇄빙선 선장과 아이스파일럿이 사실상 운항을 책임진다. 쇄빙선에서 기상과 해상, 얼음 상태를 분석해 아이스파일럿에게 쇄빙선과의 거리와 속도를 통보한다. 얼음의 두께가 얇고 시정이 양호할 경우 통상 1해상마일(시간당 1853m)을 유지한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해의 얼음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직접 북극항로를 오가는 이들의 얘기는 다르다. 니콜렌코 아이스파일럿은 “올해는 1년생 유빙 면적이 지난해보다 늘었다”며 “운항 중에는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스테나폴라리스 선상=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북극항로 승선기는 항로와 선박 통신사정을 감안해 주 1~2회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