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급신고 '코드2' 분류…단순 폭력사건으로 처리
파출소 직원 2명만 출동…형사 '날 밝은 뒤' 현장방문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여대생 '납치미수' 추정사건을 경찰이 단순 '폭행'사건으로 처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신고를 접수한 경기경찰청 112상황실은 사건을 긴급신고(코드1)가 아닌 비긴급신고(코드2) 사건으로 분류, 밤새도록 형사들도 현장에 나가보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돼 초동조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 0시 30분께 화성시 봉담읍 한 농로에서 여대생 A(20)씨가 버스에서 내렸다.

A씨 집은 정류장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닿는 거리다.

누군가 뒤를 따라오는가 싶더니 20대로 추정되는 괴한이 갑자기 A씨를 뒤에서 끌어안으면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놀란 A씨가 손을 뿌리치며 뒤를 돌아보자 괴한은 A씨의 얼굴 등을 수차례 때려 넘어뜨렸다.

괴한은 길바닥에 쓰러진 A씨를 잡으려 했고 A씨가 발버둥을 치자 왼쪽 발목을 잡았다가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도망갔다.

집으로 달려간 A씨는 마음을 진정시킨 뒤 오전 1시 12분께 112에 "납치당할 뻔 했다"고 신고했다.

문제는 경찰의 조치.
경기지방경찰청 112상황실은 5분여에 걸친 A씨와 통화 끝에 사건을 '납치의심'이 아닌 '기타형사범'으로 분류하고는 화성서부경찰서에 코드2로 지령을 전파했다.

지령은 "젊은 남자가 쫓아와서 입막고 얼굴 때려 반항을 하니 도망갔다고 한다.

신고자가 불안해하니 빠른 출동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어디에도 '납치'라는 단어는 없었다.

이로 인해 파출소 직원과 형사 모두 '긴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봉담파출소 소속 직원 2명은 파출소에서 2㎞도 안되는 A씨 집까지 가는데 16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형사들은 아예 날이 새고나서 오전 8∼9시께 현장에 나가봤다.

상황실이 긴급히 지령을 전파해 형사들과 파출소 직원, 인접 경찰서 등이 긴밀히 검거작전을 폈다면 현장 주변에서 피의자를 검거할 수도 있었지만 공조체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날밤 공포에 떨었을 피해 여성을 직접 방문한 건 파출소 직원 2명뿐이었다.

경기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과 한 관계자는 "(긴급히 움직였다면 검거할 수도 있었다는)지적에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당시 피해자가 집에 안전하게 도착해 있는 상태라 상황실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또 "'코드0'나 '코드1'은 당장 납치되고 있는 상황과 같이 긴급히 경력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에 내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성서부서 한 관계자는 "당일 인근 대학교에서 폭력사건 신고가 많아 인력운용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형사팀은 경기청 지령내용이 '폭력'이다보니 폭력사건으로 보고 조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단순 폭력사건으로 분류한 것에 대해선 "수사과정에서 사건이 (단순 폭력에서 '성폭행 미수'나 '납치미수' 등) 다른 사건으로 수정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경기청 형사과 한 관계자는 "괴한이 단순히 때리려는 게 아니라 여성의 입을 틀어막고 때리다 바닥에 넘어뜨린 뒤 붙잡으려 했다면 당연히 성범죄 목적이 있을 것으로 보고, 납치 또는 성범죄 의심사건으로 처리했어야 옳았다"고 전했다.

피해여성 A씨는 "신고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납치당할 뻔 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날 이후 학교다니는 길이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CCTV를 분석해 뿔테 안경을 쓰고 스키니진을 입은 20대 초중반의 괴한을 쫓고 있다.

(화성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goa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