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폭탄주까지…육군, 규제강화 검토

육군사관학교에서 술에 취한 남자 상급생도가 여자 하급생도를 대낮에 교내에서 성폭행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호국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육사의 음주 실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초기 육군사관학교는 생도들의 음주를 엄격하게 규제했다.

육사 21기가 입교한 1967년까지는 원칙적으로 생도의 음주는 금지됐다.

다만 4학년 2학기 때부터 장교의 초대가 있는 경우 음주할 수 있었다.

1968년부터는 훈육관(소령) 이상이 주관하는 공식 행사에선 음주할 수 있게 됐다가 육사 28기가 입교한 1974년부터는 준장인 생도대장 이상이 주관하는 행사에서만 음주할 수 있도록 규제가 다시 강화됐다.

육사는 이후 30년 가까이 생도의 음주를 엄격히 통제하다가 2002년 '3금제도'(금주·금연·금혼)에 대한 연구를 거쳐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음주를 양성화하는 차원에서 음주에 한해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육사 60기가 입교한 2003년부터는 2학년 이상 생도에 대한 음주 승인권자가 생도대장 이상에서 훈육관, 지도교수, 학부모로 하향 조정됐다.

지난 22일 발생한 성폭행 사건의 빌미가 된 대낮 음주회식 때도 대령급 학과장과 주로 영관장교인 교수 10여명이 함께 있었다.

육사 생도에게 음주가 허용됐다고 해도 무분별한 음주는 사실상 금지돼 있다.

생도생활예규에 따르면 육사 생도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까지만 음주할 수 있고 사관생도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여생도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당일 회식 때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돌리는 등 과도한 음주가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29일 "지난 22일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정황으로 볼 때 음주가 과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회식 자리에 있었던 학과장과 지도교수들이 과도한 음주를 방치한 것이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3년 8월에도 육사 생도 6명이 밤새 술을 마신 뒤 외국인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전원 퇴교 처분을 받았다.

군 안팎에서는 육사의 음주 허용기준과 음주 문화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현재 육사의 음주 승인권자의 범위가 적절한지를 제도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음주를 완전히 금지할 수는 없지만 승인권자의 범위를 좁혀 무분별한 '술판'이 벌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과도한 음주를 막기 위한 육사 규정이 모호해 이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육사 출신의 한 예비역은 "술의 종류나 술의 양 등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 없다"며 "생도의 품위를 유지하는 범위라고 애매하게 규정된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