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에 중공업사관학교를 열어 고졸 인재를 뽑아 키우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다. 그는 유럽 해양 관련 기업들을 상대로 사업을 하면서 기술계 고교 출신 최고경영자(CEO)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유럽 기업들은 기술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인재를 선발, 탄탄한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각 부문 최고 책임자로 길러내고 있는 점도 알 수 있었다. 한국과 같은 ‘OO대학’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전혀 필요가 없었다.

기업들이 중공업사관학교 같은 고졸 채용 프로그램을 늘리는 이유는 스펙보다 회사에 충성도가 높은 실무형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스펙이 좋은 신입사원들이 회사 생활을 못 견디고 그만두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했다. 이에 비해 고졸 신입사원들은 각자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절박함’에서 차이가 난다고 했다. 원기찬 삼성전자 인사팀장(부사장)은 작년 고졸 공채 면접을 본 뒤 “당장 실무에 투입해도 될 만한 인재가 많아 깜짝 놀랐다”며 “바로 대졸자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했다.

고졸 채용 바람을 타고 삼성전자는 올해에도 작년과 비슷한 700여명 내외의 고졸 정규직을 채용하기로 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8000여명의 신입사원 중 최대 2200여명을 고졸로 뽑고 협력사의 고졸 채용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기업들이 고졸을 ‘질 낮은 인력’이라고 여기던 편견에서 벗어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작년 31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고졸 취업자 업무능력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44.2%는 ‘2~3년 전 취업 인력에 비해 업무 능력이 향상됐다’고 답했다. ‘이전과 비슷하다’는 응답은 49.7%, ‘저하됐다’는 응답은 6.1%에 불과했다. 또 응답기업 10곳 중 6곳이 ‘대졸자와 동등한 승진 기회를 주고 있다’고 답했다. 고졸의 임금이 대졸 초임과 같아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9년으로 대학생의 평균 재학기간 6.5년보다 훨씬 짧았다.

하지만 작년 기준으로 대·고졸 간 평균 임금 격차는 30%에 이른다. 고졸 일자리의 질을 높일 필요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