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박모씨(25)는 대통령 선거 전날 작은 목표를 세웠다. 이번 투표에서 ‘동네 1등’을 하는 것. 잠을 자면 일찍 못 일어날까봐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밤을 새웠다. 19일 이른 아침 서울 삼성동 제1투표소로 달려간 박씨는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 조모씨(71) 부부와 마주쳤다. 투표순서 1등을 놓치기 싫었던 박씨와 조씨 부부는 먼저 투표하겠다며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박씨가 연장자인 조씨 부부에게 1, 2등을 양보해 ‘동메달’을 차지했다. 조씨는 “젊은이들이 선거에 무관심하다는데, 20대가 투표하려고 새벽부터 나왔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투표 경쟁’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서울 시내 각 투표소에는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도 투표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소 앞에서 ‘투표 인증샷’까지 찍었다. 서울 삼청동에서는 직장인 김모씨(35)가 ‘전국 1등으로 투표하겠다’며 새벽 1시30분부터 침낭 등 방한 장비를 갖추고 노숙도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에 냉소적인 것처럼 행동하는 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쿨한 것’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동시에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것 같다. 직장인 황모씨(29)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투표인증샷을 올리지 않으면 ‘개념없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친구들과 경쟁하듯 투표했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흑색 공방을 벌였고 SNS에서는 근거 없는 사실을 퍼나르는 ‘묻지마 공세’가 막판에 기승을 부렸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SNS를 통한 욕설도 많이 오갔다. 후보들은 재원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공약을 남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은 이전 선거보다 진일보했다는 게 많은 이들의 평가다. 지역감정 조장이나 금권선거 논란이 줄었다. 주요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고, 유권자들은 투표 경쟁으로 화답했다. 새 대통령은 이처럼 변한 유권자들에게 ‘좋은 정치’로 보답할 책임을 지게 됐다. 투표율을 끌어올리기는 매우 어렵지만, 떨어뜨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박상익 지식사회부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