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 네 명의 후보 가운데 한 명이자 투표용지 첫 번째 칸을 차지하고 있던 이상면 전 서울대 법대 교수가 14일 서울시교육감 후보에서 사퇴함에 따라 보수 대표 후보로 꼽혀온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이 선거전에서 한층 유리해졌다.

이 전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진보 진영에서 단일 후보를 내 많은 지지를 받는 가운데 보수가 갈라진다면 이번 선거에서 상당히 위험한 상항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계속 교육운동을 이어가겠지만 문 후보가 저보다 더 나은 전망이 보인다고 생각했다”며 “문 후보를 지지해 위험 상태인 서울교육을 바로잡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해 사퇴 이후 지지자를 분명히 밝혔다.

이날 오후 2시에 열린 사퇴회견은 선거 캠프 관계자들도 이 전 교수의 사퇴 결심을 모르는 상태에서 30분 전에 예고될 정도로 급작스럽게 잡혔다. 이에 대해 이 전 교수는 “적절한 시점이 됐다고 생각해 갑자기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전 교수의 사퇴로 교육감 재선거 후보는 보수 진영의 문 후보,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 최명복 서울시 교육의원 등과 진보 측 이수호 전 전교조 위원장 등 네 명이 남게 됐다. 다만 선거일에 쓰이는 투표용지는 인쇄가 끝났기 때문에 이 전 교수가 투표용지상에는 그대로 남아 사표(死票)가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

이 전 교수는 지난 11~12일 KB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16.9%), 이수호 후보(15.5%)에 이어 5.5%를 차지하는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3위를 달려 왔다. 투표용지 순서 추첨에서 첫 번째를 뽑은 것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지율 3위의 이 전 교수가 물러남에 따라 보수 진영의 표는 문 후보 쪽으로 집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 후보 측은 이날 이 전 교수 사퇴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문 후보 캠프 관계자는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선거가 워낙 다른 변수도 많기 때문에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반면 이 후보 측은 즉각 의혹을 제기했다. 이 후보 캠프의 조연희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중도 포기로 입는 금전적 손실과 위신의 실추를 생각하면 이 전 교수는 보수 단체들의 협박에 굴복한 희생자”라며 “투표용지 첫 칸이라는 기회를 포기한 것은 다른 유혹이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 양강을 구성하고 있는 문 후보와 이 후보는 이날도 서로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문 후보는 시교육청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 후보는 과거 전교조 위원장으로서의 과오를 인정하고 이제라도 전교조와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머리띠를 두르고 삭발하며 국가보안법 철폐, 고려연방제 통일, 주한미군 철수를 외친 것이 이 후보이고 전교조”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 측은 이에 대해 “문 후보가 합법 교원단체인 전교조를 부인하는 것은 전교조에 가입한 많은 교사들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전교조가 사회 대립과 분열을 조장한다는 명확한 근거를 대라”고 반박했다. 또 “문 후보는 학원비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등 사교육업체를 대리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