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수 경기가 극도로 침체됐지만 수입차 시장만큼은 예외였다. 국산차 판매량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중에도 수입차 판매는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시장이 호황이었던 만큼 업체 간 판매경쟁도 치열했다. 업체들은 새로운 모델들을 속속 들여왔고 하반기에는 ‘신차 융단폭격’이라고 할 만큼 많은 수입차들이 국내 시장에 상륙했다. 올해 판매량 상위 20위에 오른 모델들이 대부분 독일 브랜드로 ‘독일차 전성시대’가 펼쳐진 점도 수입차시장의 특징이다.

14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1~11월까지 BMW의 디젤 준대형 세단 ‘520d’가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에는 판매량 2위였지만 올해는 작년 1위 모델인 메르세데스 벤츠 ‘E300’을 2위로 밀어냈다. 이 기간 520d의 판매량은 7277대로 E300(5283대)과 2000대 가까운 격차를 보였다. 지난해 1, 2위 간 격차가 800대가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520d에 맞설 만한 ‘적수’가 없었던 셈이다.

국내 수입차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BMW는 ‘미니 쿠퍼D’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X3 2.0d’를 각각 16, 17위에 올리는 등 가장 많은 5개의 모델을 20위권 안에 진입시켰다. 벤츠도 2위인 E300과 ‘E220 CDI’(11위), ‘C200’(12위), ‘C220 CDI’(20위) 등 4종의 차량을 20위 안에 포함시켜 자존심을 지켰다.
판매량 3위는 올초 출시된 도요타의 ‘캠리’가 차지했다. 캠리는 5108대가 팔려 E300과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도요타는 두 종의 하이브리드차량(휘발유·전기혼용차)을 20위권 명단에 올렸다. ‘프리우스’와 ‘캠리 하이브리드’가 각각 9위, 15위를 차지해 ‘하이브리드 강자’로서의 체면을 살렸다.

도요타 모델 2개를 빼면 독일차들이 ‘톱10’을 싹쓸이했다. 4위는 BMW ‘320d’, 한 다리 건너 6위 모델도 BMW ‘528’이었다. BMW는 국내 수입차 판매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폭스바겐의 중형 SUV ‘티구안 2.0 TDI 블루모션’이 판매 5위에 올랐다. 해치백의 교과서로 불리는 ‘골프’가 가장 많이 팔렸을 것 같지만 ‘골프 2.0 TDI’는 7위였다. 지난해 5위였던 것에 비하면 저조한 성적이지만, 올해 7세대 신형 모델이 출시된 점을 감안하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8위는 아우디의 준대형 세단 ‘A6 3.0 TDI 콰트로’. 아우디 차량들은 특정모델이 판매를 주도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고른 인기를 누리는 경향이 있다. 아우디는 13위에 ‘A4 2.0 TDI’, 14위에 ‘A6 3.0 TFSI 콰트로’를 각각 포진시켰다. TDI는 디젤, TFSI는 가솔린 모델이다.

10위는 폭스바겐의 쿠페형 세단 ‘CC 2.0 TDI 블루모션’에 돌아갔다. ‘제타 2.0 TDI’가 19위에 오르는 등 폭스바겐은 4개의 모델을 20위권에 진입시켰다.

올해 판매량을 분석해보면 BMW와 벤츠, 폭스바겐, 아우디, 도요타 등 업계 1~5위 업체가 베스트셀링모델 20개 차종 중 19종을 장악했다. 수입차협회에 등록된 나머지 19개 업체들로서는 입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명품 브랜드 벤틀리나 롤스로이스 등엔 그다지 신경쓰이는 일은 아니겠지만….


전체 판매량 10위권 밖의 업체로는 유일하게 혼다가 ‘CR-V’를 20위권에 포함시켰다. 한 때는 지금의 BMW못지않게 국내 수입차 시장을 호령했던 혼다로서는 옛날이 그리울 법하다. 하지만 내년에는 좀 다를 것으로 보인다. 혼다는 최근 두 달 사이에 5~6종의 신차를 내놓으며 반격을 시작했다. 다른 업체들도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현재 순위에 큰 변화는 없겠지만 아직 12월이 끝나지 않았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