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당 대표 출신, 늘 '비주류'…"서민정책의 원조" 주장

새누리당 홍준표(58) 경남지사 후보는 힘겨운 당내 경선을 거쳐 본선에 올랐다.

'낙하산 후보' 지적에 "당 대표 지냈다고 전략공천 받은 것도 아니고 계급장 다 떼고 경선하는데 왜 낙하산이냐"고 항변했다.

창녕군 남지가 고향인 그는 어린 시절 합천, 대구, 다시 창녕읍으로 옮겨다니며 혹독한 가난을 겪었다.

한학을 공부한 아버지는 부잣집 딸을 아내로 맞았지만 한량 기질 때문에 평생 가족을 고생시킨 '무능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불의와 타협하진 않았고 어머니에겐 '작은 우주'였다고 소개했다.

매년 봄 보릿고개 때면 소년 준표도 또래 친구 집에서 일을 해야 했다.

참으로 부끄럽고 창피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대구 영남중·고교 6년간 도시락을 한 번도 싸가지 못하고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웠다.

홍 후보가 체중 미달에다 시력 문제 등으로 방위병 복무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 특차로 합격했으나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경찰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고 검사가 되기로 결심, 벼락치기로 문과공부를 해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다.

6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 '모래시계 검사'로 명성을 날렸다.

성역 없는 수사를 했다고 스스로 평가하지만 조직과 불화도 많았다.

1995년 10월 검찰을 떠났다.

'조직에 치명적인 상처를 줬다'는 등 따돌림을 당한 것이 이유였다고 말했다.

검찰을 떠나자 수사 대상이던 조직폭력배들의 협박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무작정 정치에 입문했다.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자진 사퇴하고 미국에 건너가 현지에 머물던 이명박 대통령과 교분을 쌓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 '반값 아파트' 등 정책을 선보인 서민정책, 경제 민주화의 원조라고 주장한다.

최근 트위트에서 같은 당 법사위원들에게 '대형 마트 규제법'을 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자주 '막말'시비에 휘말린다.

경선과정에서 거만하다는 지적에 '당당한 것'이라고 맞받기도 했다.

현 정부의 행정구역 개편 방향처럼 광역자치단체 폐지에 찬동한 그가 도지사직에 도전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살아온 궤적을 보면 그는 끊임없이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고자 했다.

검찰에서도, 당에서도 비주류 신세였던 그가 고향에서 '중심'으로 진입할 지 심판일은 다가오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b94051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