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무한경쟁에 내몰려 있다. 과거에는 선진국 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고 이전받거나 모방한 상품(짝퉁)을 독점적으로 만들어 많은 이익을 남겼다. 그러나 이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세계인의 감성 벽을 뛰어넘은 초일류 상품을 다수 확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운명이다. 이른바 디자인 혁명이다. 200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디자인 경영을 선언했다. “0.6초의 승부. 소비자 한 사람이 상품 진열대를 돌아다니는 30분 동안에 3만개의 상품을 둘러본다. 한 상품에 소비자의 시선이 머무는 시간은 평균 0.6초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고객의 발길을 잡지 못하면 마케팅 싸움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중략) 이제 삼성 제품은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반영된 독창적인 디자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싸고 질좋은 제품이 팔리는 시대는 지나갔다. 디자인 혁명을 통해 상품의 품격을 한 차원 높여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신념에 찬 말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서바이벌 카드이고, 막대한 부를 가져다 주는 멋진 디자인은 어떤 상황에서 생겨날까. 그런 디자인은 수학 공식 몇 개 외우고 그냥 밀어붙이거나 쥐어짠다고 생겨나지 않는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도 한순간에 떠오르는 것이 아이디어이고 영감(靈感, Inspiration)이다. 세상이 깜짝 놀랄 비범한 아이디어는 영기가 서린 명당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생각의 기가 응집된 아이디어 명당을 직접 찾아가 솜방망이처럼 대지의 기를 온몸으로 빨아들이고, 유리알처럼 정신을 투명하게 닦아야 한다.

안양에 소재한 삼막사가 그중의 하나이다.신라시대에 원효가 창건한 이 절은 최고의 고승들이 거쳐 간 도량답게 기만큼은 어느 곳보다 청량하고 엄숙하다. 이 절이 디자인의 메카로 불리는 데는 절 오른쪽 절벽에 새겨진 삼귀자 문양 때문이다. 바위 면을 네모지게 다듬은 후 거북을 3가지 형태로 음각해 놓았는데, 이것은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이 1920년 이곳에 은거할 당시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전수한 것이라고 한다. 오른쪽 것은 ‘龜’자를 닮았고, 가운데는 거북의 모습을 빼닮았고, 왼쪽 것은 네 다리를 쭉 뻗은 거북이 벌러덩 누운 형상이다.

지운영이 꿈속의 글자를 또렷이 기억해 바위에 새길 수 있었던 것은 기가 출중한 덕택이니, 삼막사는 꿈을 꾸어 기발한 디자인을 얻는 명당임이 분명하다. 아주 새로운 영감이나 굉장히 아름답고 놀라운 상상력이 필요한 공업(제품, 가구, 주얼리), 시각, 패션, 환경(건축, 조형, 조명),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삼막사를 순례해 삼귀자를 마음속에 그린 뒤 잠을 자 보자. 연구에 몰입했던 과학자들이 깜빡 졸다가 꿈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듯, 꿈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영감을 얻게 될 것이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