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체 대상의 고객지원본부장인 주홍 전무는 매일 아침 직원들에게 차를 직접 따라주는 ‘웨이터’가 된다. 본인이 직접 다기에서 작설차 같은 차를 우려낸 후 40명 가까운 직원들의 자리를 돌며 일일이 따라준다.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던 직원들도 눈을 마주치며 가벼운 수인사와 함께 차를 받아 마시며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선물로 받은 녹차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직원들과 나눠 마셔야겠다고 시작한 게 벌써 7년 정도 됐네요. 아침마다 차를 주며 그들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고민도 읽을 수 있고요. 제겐 차가 소통의 중요한 도구가 된 셈입니다.” 대상 홍보팀의 한 직원은 주 전무에게서 ‘아버지’를 느낀다고 한다.

스트레스의 연속인 김과장 이대리들의 직장 생활. 그러나 팍팍한 삶 속에서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는 미담도 적지 않다. 따끈한 우동 한 그릇이 생각나는 겨울 입구에서, 김과장 이대리들을 웃고 울리는 아름다운 사연들을 모아봤다.

◆한번 동료는 영원한 동료

농심에서 3년간 근무했다가 지금은 대학 부설 연구소로 옮긴 강모 주임. 이직 후에는 미안한 마음 때문에 전 직장 동료를 만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강 주임은 이직한 이후에도 전 직장 동료들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어느 날 전 직장 팀원들이 중요한 업무로 연일 야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자동차로 1시간30분가량을 달려갔다. 전 직장 동료들을 위해 빵과 와플, 사탕 등 푸짐한 간식거리를 나눠주기 위해서다. 이에 감동한 전 직장 동료들에게 강 주임은 ‘단팥빵 아가씨’가 됐고, 지금도 회식 때마다 게스트로 초대받고 있다.

◆장모님 결혼 기념일까지…

올해 초 GS칼텍스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박 과장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했다가 장모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곤 깜짝 놀랐다. 장모님은 “결혼 기념일 축하 꽃다발을 잘 받았다”며 “우리 사위 최고!”를 연발했다. 본인 결혼 기념일도 가끔 까먹는 그가 이런 전화를 받았으니 얼마나 어안이 벙벙했을까.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하니 문득 떠오른 일이 있었다. 입사 초반 팀장이 사비를 들여 배우자나 가족에게 축하 꽃다발이나 화분, 케이크를 선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자신에게서 받아간 날짜라는 것을. “그 덕에 장모님의 사랑도 듬뿍 받고 아내에겐 인간적인 회사로 잘 옮겼다는 칭찬까지 들었죠. 뿌듯함이 두 배가 됐다고 할까요.”

◆팀장을 회의실로 은밀히 불러서는…

효성 중공업PG 창원공장에서 일하는 5명의 차단기기술개발팀 팀원들이 최근 점심시간에 신성철 팀장을 회의실로 불렀다. 팀원들의 진지한 표정에 신 팀장은 뭔가 심각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신 팀장을 가운데 두고 자리에 둘러앉아 고개를 푹 숙인 팀원들.

잔뜩 긴장한 신 팀장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려는 순간 프로젝터가 작동을 하더니 정면에 커다란 영상이 펼쳐졌다. 뜻밖에 흘러나오는 은은한 음악과 함께 이런 문구들이 떠올랐다. “기술개발팀 리더 신성철 팀장님, 오늘 팀장님께 못 보여드린 저희의 마음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이후 팀원들의 얼굴이 차례로 등장했다.

가장 먼저 나선 권순동 대리는 “2009년부터 3년간 함께했는데 때로는 형 같고 때로는 멘토가 돼주고 또 듬직한 팀장님이기도 하다”며 “저에게는 행운”이라고 말했다. 김한주 사원은 “팀장님을 보며 나이가 들어 저 위치에 가면 꼭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목찬영 사원은 “팀장님의 유일한 단점은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는 것”이라고 애정어린 일침(?)을 가했고, 박주완 사원은 “평소에 짜증을 너무 많이 부렸다”고 공개 반성했다. 팀원들의 솔직한 고백에 감동받은 신 팀장. “팀원들과 일하면서 ‘욱’할 때마다 영상 속 팀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이 다스려지네요.”

◆200명을 위한 아름다운 밥

고객은 200여명, 8억원의 연구·개발비가 들었지만 연간 매출은 5000만원에 불과하다. 판매가격은 제조원가 수준인 1800원 정도일 뿐. CJ제일제당이 2009년부터 단백질 제한이 필요한 선천성 대사질환자들을 위해 내놓고 있는 ‘햇반 저단백밥’ 얘기다. 이 제품은 단백질 함량을 일반 밥의 10분의 1로 줄여 ‘페닐케톤뇨증(PKU)’을 포함해 단백질 제한이 필요한 선천성 대사질환자를 위해 만든 특수 햇반이다. 제품이 출시된 계기는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사내 직원에게서 비롯됐다. 자신의 아이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저단백밥을 만들어줄 수 없겠느냐는 간곡한 부탁에 당시 김진수 대표가 즉석에서 제품 개발을 결정했고, 다음날부터 식품연구소에서 제품 개발에 나서 7개월 만에 빛을 보게 됐다. 햇반의 기술력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어 보람찬 마음으로 제품 개발에 임했다는 게 CJ 측의 설명이다. 덕분에 200여명의 사람들이 제대로 된 ‘밥맛’을 느낄 수 있게 됐다.

◆누드 사진 고마워요

노기만 LS니꼬동제련 대리는 사내에서 ‘살신성인의 분위기 메이커’로 통한다. 특히 씨유톡(CU Talk)이라는 사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성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800여명의 직원들 중 가장 부지런하게 글을 올리던 그는 한때 씨유톡에 대한 열기가 시들해지자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본인글에 댓글이 20개 이상 붙으면 자신의 누드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흥분의 도가니 속에 그의 글에는 당연히 20개를 훨씬 웃도는 댓글이 줄줄이 따라붙었다. 그는 약속대로 자신의 전라 사진을 공개했고, 흥분의 도가니는 순식간에 폭소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그가 공개한 자신의 누드 사진은 백일 사진. 그의 살신성인(?) 정신 덕분에 사내 SNS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고 한다.

강경민/고경봉/윤정현/임현우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