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수의사여서 어릴 때부터 동물들과 자연스레 지냈다. 특히 다섯 살 때 승마를 배우면서 말과의 교감이 남달랐던 것 같다.”

지난 7월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로 초빙된 재닛 한 교수(33·사진)는 한국에서 유일한 미국 말 내과 전문의다. 말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수의사가 국내 교수로 임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서울대에서 강의하는 과목은 마학(馬學). 일반에 생소한 마학은 말의 역사 품종 혈통 생리적 심리적 특성 신체구조와 성장, 관리 등 말에 관한 기본적이고 전반적인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 과목은 수의대 본과 3학년 학생 30여명을 대상으로 하는 선택과목이다. 내년부터는 필수과목이 될 예정이다. 최근 제주도를 다녀온 한 교수는 “경마와 승마 등 국내 말 산업의 잠재력이 크다”며 “한국에서도 말 산업 종사자들과 협력해 말 교육에 앞장서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1979년 미국에서 태어난 한 교수가 수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버지 한의생 씨의 영향이 컸다. 1960년대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아버지 한씨는 1960년대 후반 미국 버지니아로 건너가 동물병원을 개업했다. 어릴 때부터 동물과 함께 자란 한 교수는 승마를 배우면서 말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한 교수는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갖고 있는 미국에서 수의사가 되기 위해 2000년 스탠퍼드대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3년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한 교수는 2004년 코넬대 수의대를 졸업하고 2008년 버지니아텍 수의대에서 말 내과 전문의 과정을 마쳤다.

서울대 수의대가 한 교수를 영입한 배경은 한국 말 산업 육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현재 한국 수의학계는 아시아 수의 전문의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한·중·일을 비롯해 대만, 말레이시아 등과 인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이 제도는 해당 국가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면 협력대상 국가에서도 수의사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올해 말 안과 전문의 제도를 시작으로 피부과 내과 외과 등으로 교류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서울대 수의대는 2015년까지 미국 수의사협회 인증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수의 전문의 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발달한 곳의 인재들을 영입해 수의 교육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이 수의계의 과제다.

이인형 서울대 수의대 기획실장은 “전문의만이 전문의를 육성할 수 있기 때문에 우수한 전문의를 영입해 학생들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한 교수처럼 전문의 자격을 갖춘 인재들을 임상 분야 교수로 추가 임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