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의 유족이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낸 주식양도 등 청구소송의 항소심 첫 재판이 24일 열렸다.

서울고법 민사12부(부장판사 박형남)는 이날 김씨의 유족 6명이 “군사정권이 강탈한 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부산일보의 주식과 토지를 돌려달라”며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양도 등 청구소송 항소심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김씨의 장남 영구씨(73)는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부일장학회 재산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강탈당한 것이 명백하다”며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국가가 불법으로 강탈한 재산을 돌려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독일은 나치헌법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았다”며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수장학회 측 변호인은 “김씨가 강압에 의해 증여를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헌납했음을 입증할 수 있다”며 “설사 강탈인 것이 인정된다고 해도 제척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난 만큼 반환 책임은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아직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김씨 유족을 향해 “사실관계 인정과 법률적 판단 등 쟁점이 많은 사건이므로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꼭 받아야 할 사건”이라고 강조하며 가급적 빨리 변호사를 선임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씨 유족은 지난 1심 재판에서 변론을 맡았던 법무법인 태평양 측과 재계약을 하지 않아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하면서 이날 실질적인 변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족들은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후보나 정수장학회 쪽에서 화해 등의 요청이 오면 응하기 위해 기다렸으나 아무 연락이 없었다”며 “조속히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음달 28일 다시 재판을 열어 본격적인 변론을 이어갈 예정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김지태씨가 정부의 강압에 의해 장학회 주식을 증여한 사실은 인정되나, 증여를 취소할 수 있는 10년의 기한이 지났고,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도 소멸됐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