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불산 누출 사고와 관련해 정부가 11일 피해지역 주민대책을 발표하면서 뒤늦게 제도 개선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종합적인 안전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화학물질 많으면 안전계획 세워야

사고가 난 휴브글로벌 구미공장은 36짜리 불산 탱크 두 대로 작업을 했다. 규정량의 30배가 넘는 불산을 취급했지만 안전운전 계획, 비상조치 계획은 수립조차 하지 않았다. ‘공정안전보고서’ 제출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관련법은 불산을 1 이상 다루는 업체에 대해 이 보고서를 고용노동부에 내도록 했지만 근로자가 5인 미만인 경우는 예외로 했다.

이에 대해 정종화 경북대 화학과 교수는 “얼마나 독성이 강한가, 얼마나 많은 양을 쓰는가 등을 기준으로 보고서 제출 대상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경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도 “보고서는 중대 사고를 막기 위해서 사전 예방 차원에서 만드는 것”이라며 “사람 수가 적으면 오히려 사고를 막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처럼 전담기관 설치해야

공정안전보고서 제출 대상에서 제외돼도 관리 방법은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고용부 지청이 정기적으로 현장점검을 나가도록 관련법이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난 휴브글로벌 구미공장에 대한 현장점검은 매우 형식적으로 이뤄졌다. 사업장에 기본적인 방재약품(소석회)조차 없었고 2009년에도 유사한 사고가 있었지만 근로자들은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일했다.

전문가들은 관리체계가 일원화돼 있지 않아 책임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지자체와 고용부 지청에 현장점검 책임이 나눠져 있고 이를 취합하는 중앙행정기관도 없다. 더구나 유해 화학약품 총괄기관인 환경부는 유독물 현장점검에서 빠져 있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미국은 주마다 독성물질관리센터(PCC)를 설치해 각 부처에서 만든 정보를 취합하고 시민들에게도 정보를 제공해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한국도 이런 시스템을 밴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대응 매뉴얼 실효성 높여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난 2월 ‘화학 유해물질 유출사고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을 마련했지만 이번 사고 대응 과정에서 철저히 무시됐다. 매뉴얼대로라면 정부는 잔류오염 조사 등을 모두 마친 뒤 대응기관 합동회의를 열어 주민 복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잔류오염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 복귀 결정을 내려 2차 노출 피해를 발생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0일까지 두통 등을 호소하며 병원 치료를 받은 사람이 7000여명에 이른다. 홍태환 한국교통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민방위 훈련을 할 때 이 부분을 훈련 내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화학물질 안전관리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해 매뉴얼 시행을 점검토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이날 △피해 주민들에게 생계지원금 지급 △취득세 납세기한 연장 및 지방세 징수 유예 등을 확정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