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제1호 민자사업으로 2004년 개통된 우면산터널. 이 터널의 하루 평균 통행량은 2만7000여대 수준이지만 시 산하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은 1999년 7만여대(요금 1000원 기준), 개통 직전인 2003년 3만5000여대(요금 2000원 기준)로 예측했다.

턱없이 부풀려진 수치 탓에 서울시는 지난 8년간 최소운영수입보장금액(MRG)으로 517억원을 민간사업자에 물어줬다.

내년 4월 개통 예정인 용인경전철도 8년 전 국책기관인 교통개발연구원(현 교통연구원)의 ‘뻥튀기’ 예측 때문에 혈세가 낭비될 처지다. 용인시는 향후 30년간 1조8000억원의 재정보조금을 민간사업자에 지급해야 한다.

이처럼 터무니없이 부실하게 교통수요를 예측했지만 해당 연구원들과 공공 기관들은 면죄부를 받은 상태다. 불법행위(부당하게 수요예측을 부풀린 혐의)의 소멸시효(민사 3년·형사 7년)가 지난 데다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런 엉터리 교통수요 예측으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일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서울시가 민자사업과 관련해 교통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용역 수행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명문화하기 때문이다.

시는 ‘민자사업 교통수요 부실예측 방지 4대 내실화 대책’을 마련해 내년 1월부터 이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21일 밝혔다. ‘제2의 우면산터널 사태’ 등을 막기 위한 4대 내실화 대책은 △계약서에 용역수행자의 민·형사상 책임소재 명기 △서울시 여건에 맞는 ‘서울시 교통분석 가이드라인’ 마련 △주변 여건 변화시 교통량 재분석 실시 근거 마련 △사후 평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담고 있다.

시는 민자사업 시작 전 한 번만 실시하던 교통수요 예측을 사업 중간과 사업 종료 후에도 변화요소를 적용해 여러 번 실시할 계획이다. 교통분석시 주요 요소로 적용되는 인구와 경제상황 등 사회지표는 시가 제시한다.

시는 시의회가 구성한 ‘지하철 9호선 및 우면산터널 민간사업자 특혜의혹 진상특위’의 활동을 지켜본 뒤 4대 내실화 대책의 세부 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후 전문가 협의, 시민단체 의견수렴 등의 과정을 거쳐 연말께 최종 대책을 발표할 방침이다.

시는 ‘4대 내실화 대책’을 현재 추진 중인 민자사업인 은평새길(불광동 통일로~부암동 자하문길), 제물포터널(신월동 신월IC~여의도 여의대로), 신림경전철(서울대입구~여의도) 등에 우선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정시윤 서울시 도로계획과장은 “교통량이 과다 또는 과소 예측된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타당성 없는 사업 논란’이나 MRG를 과도하게 지급할 일이 없어져 민자사업자 특혜 시비도 많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