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고궁 인근 공사현장에서 불이 나 4명이 숨지고 2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13일 오전 11시20분께 서울 소격동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사현장 지하 3층에서 불이 나 1시간30여분 만인 오후 12시46분께 진화됐다. 이날 화재로 현장 인부 4명이 연기 흡입으로 숨졌다. 타워크레인 작업자 한 명이 대피하던 중 추락해 중태에 빠지는 등 다른 현장인부 24명이 연기를 들여마시거나 부상을 입고 서울대병원, 강북삼성병원, 을지로 백병원으로 이송됐다.

소방당국과 업계는 당시 지하 공사현장에서 내장재로 뿌리는 인화성 스프레이 수십통이 발견된 점에 주목, 인화물질이 타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지하에 스티로폼은 물론 패널, 스프레이, 산소통, LPG통 등이 많이 있어 위험한 상황이었다”며 “그런데도 현장에 소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현장 관계자를 상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불이 난 서울 미술관 공사현장은 옛 기무사 터로 지난해 6월 종친부(宗親府)의 핵심 건물인 경근·옥척·이승당 등 등 기반 흔적으로 추정되는 유구(遺構·옛 토목건축 구조·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가 발견돼 화제가 됐던 곳. 종친부는 조선시대에 역대 왕의 계보, 초상화를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던 관아다.

서울 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공사비 7535억원을 들여 국군기무사령부 터와 국군 서울병원 터 2만7303㎡ 부지에 연면적 5만2627㎡ 지하 3층~지상 3층 규모로 공사가 진행돼왔다. 내년 1월30일이 개관 예정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작년 9월 시공사로 GS건설을 선정했고, 지난 6월15일 기공식을 가졌다.

이처럼 문화적 가치가 높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인데도 공사 현장에는 소화기 몇 대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소방시설조차 구비하지 않아 ‘안전 불감증’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소방당국은 현장에 소방대원 160여명과 차량 30대를 투입, 진화에 나섰으나 현장 면적이 넓고 유독가스가 심해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지하 3개층 면적이 3만1000여㎡에 이르고 신축 공사장이다 보니 이렇다 할 소방시설도 없었다”며 “실내에는 스티로폼과 샌드위치 패널 등 불이 잘 붙는 단열재가 많이 널려 있어 진화가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화재로 시커먼 연기가 경복궁 주변을 뒤덮어 경내를 관람하던 관광객들이 일제히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