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한 사내가 도착했다. 그의 이름은 박복수. 새로운 남자의 등장이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오랜 친구 박명원에게 전화를 걸어 불러냈다. 박복수는 무슨 일 때문에 13시간의 비행을 거쳐 한국에 온 것일까. 어쨌든 또다시 대결이다.

박명원:박복수! 오랜만이군. 이게 몇 년 만인가?

박복수:노 노(No No). 난 ‘외국물’을 오래 먹어서 그런지 박복수라고 부르면 영 어색해. 외국식으로 ‘복수박’이라고 불러주게.

박명원:자식, 깐깐한 성격은 여전하구먼.

복수박:자네 한국에서 아주 잘나가고 있다더군. 축하하네. 동향 친구인 안우딘도 잘 지내지?

박명원:그 놈 얘기는 꺼내지도 말게. 정은이라는 여자랑 사귀느라 전화 한 통 없어.

복수박:하하하. 안우딘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지. 자네는 주로 남자들이 꼬이지 않나?

박명원:그 입 다물게. 왜 나를 불렀나?

복수박:내 애마인 신형 파사트가 이번 달에 한국에 출시되거든. 겸사겸사 한국에 와 연락했네. 자네들이 파사트와 폭스바겐에 대해 잘 모르지 않나.

박명원:어찌 모를 수가 있겠나. 나 역시 독일 BMW의 오너인데 말이야. ‘국민차’라는 민망한 뜻을 가진 폭스바겐을 모를 리가 있나.

복수박:다른 사람 신경 긁는 성격은 여전하구먼. 그럼 파사트가 무슨 뜻인지는 아나? 자네 차는 320, 535 이렇게 일차원적으로 숫자로만 모델명을 표시하니 알 리가 없겠지? 핫핫.

박명원:비행기에서 악몽을 꿨나. 왜 자꾸 헛소리를 하나. 파사트(Passat)는 ‘무역풍’을 뜻하는 말이지 않나. 파사트는 한때 산타나(Santana)로 불렸는데 이 역시 멕시코 캘리포니아만 코르테즈해를 지나가는 ‘사막의 돌풍’을 가리키는 말이지.

복수박:천하의 복수박이 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해박한 지식이구먼. 핫핫. 그렇다면 폭스바겐의 자동차들이 대부분 바람 이름인 건 알고 있나?

박명원:정말?

복수박:여기서 자네의 한계가 드러나는구먼. 해치백의 원조인 골프(Golf)는 멕시코만에서 남북으로 강하게 부는 바람 이름일세. 골프는 트렁크가 작아 골프백을 넣을 수 없지. 골프와 동급 세단인 제타(Jetta)는 초고속 제트기류를 의미해. 작지만 힘이 느껴지는 차의 특성을 바람에 대입한 것이야. 올초 한국 시장에 출시된 쿠페 시로코(Scirocco)는 사하라 사막에서 지중해로 부는 뜨거운 바람이지. 이름으로 차의 특성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지 않은가?

박명원:흠…. 하지만 이런 독특한 작명법이 폭스바겐의 전유물은 아니지. 현대자동차가 이름짓는 방법도 눈에 띈다네. 알고 있나?

복수박:왜, 하필 현대차를 거론하는 거지?

박명원:마틴 빈터콘 폭스바겐 그룹 회장님도 현대차의 해치백 ‘i30’의 열렬한 팬 아니신가! 하하하. 말 나온 김에 현대차는 i30를 비롯해 i10, i20, i40 등 기억하기 쉬운 i 시리즈로 유럽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

복수박:그래, i 시리즈가 인기인 건 인정하지. 그래서 BMW도 현대차를 따라서 i3, i8을 내놓은 거 아닌가! 핫핫핫!

박명원:이 자식이…. 뿐만이 아니야. 현대·기아차의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는 지역 이름이 대부분이네. 현대차 투싼(Tucson)은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주의 투싼에서 유래한 것이지. 싼타페(Santafe)는 미국 뉴멕시코의 주도로 레저문화가 발달한 관광지야. 베라크루즈(Veracruz) 역시 카리브해 최대의 항구이자 음악과 문화의 휴양도시지. 기아차는 어떤가. 모하비(Mohave)는 기아차 주행성능시험장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지명이고 쏘렌토(Sorento)는 가곡 ‘돌아오라 쏘렌토’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나폴리항 근처의 아름다운 휴양지일세. 이름만 들어도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도록 SUV와 지명을 연계한 것이지.

복수박:그… 그렇게 깊은 뜻이….

박명원:하하하! 이제 알겠나? 폭스바겐만 독특한 작명법을 활용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럭셔리 브랜드로 가볼까?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애마로 알려진 롤스로이스는 잘 알겠지? 이 회사의 두 모델인 팬텀과 고스트는 모두 유령을 뜻하는 말이야. 유령처럼 소리없이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복수박:흠…. 자네와 상관없는 브랜드로 잘도 나불대는군.

박명원:이 사람! ‘촉’이 무뎌졌구먼. 왜 상관이 없나. 롤스로이스는 BMW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일세. 핫핫핫!

복수박:잘났네, 잘났어. 그런데 자네는 내 전화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달려나왔구먼. 시간이 많은가 봐. 여자친구는 없나?

박명원:ㅠ.ㅠ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