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잡콘서트 찾은 광고 선배 3명의 '입사 스토리'
“취업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예요. 전 제일기획을 꼬드겼고 마침내 제게 넘어왔어요.”(장원준 제일기획 2년차 카피라이터)

“달라도…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잖아요. 그저 나답게, 나답게, 나답게 도전하면 어떨까요.”(김민철 TBWA 8년차 카피라이터)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제 가슴속 한마디가 취준생에게도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조숙 이노션월드와이드 4년차 광고기획자)

한국경제신문 6월 잡콘서트가 지난달 26~28일 사흘간 한경 본사 18층 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잡콘에는 제일기획, TBWA, 이노션월드와이드 등 국내 최고의 광고대행사 3곳이 참석했다. 행사 내내 광고인을 꿈꾸는 대학생 300여명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지난달 28일에는 대구의 계명대 광고홍보학과 학생 34명이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는 열정도 보였다.

잡콘에 온 카피라이터(CW)와 광고기획자(AE)들이 들려준 잡스토리(job story)엔 삶의 아픔과 기쁨 속에서 건져올린 진주가 하나씩 숨어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한경 잡콘서트 찾은 광고 선배 3명의 '입사 스토리'
◆최고의 스펙은 당신입니다

“전 스펙이 없어요. 그런데… 식스팩도 없어요. 하하하.” AE에서 CW로 변신한 장원준 씨(29·서강대 신방과)의 ‘반전 한마디’에 강당은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변했다. 3점대 초반 학점, 워드프로세서 1급, 운전면허 2종이 그가 가진 스펙의 전부. 누구나 다 한다는 광고전 수상경력 하나도 없었다. 비록 무스펙이었지만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학생들은 감동의 눈빛을 보냈다.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저에게 묻는 일이었어요. 왜 광고인이 되고 싶은지,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지를….” 지하철을 타다가도, 꿈을 꾸면서도 광고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광고에 올인하리라고 결심했다.

그 다음 그가 한 일은 제일기획과의 데이트. “취업을 연애라고 생각했어요. 제일기획을 한번 꼬드겨보자고 마음먹었죠.” 그리고 장씨는 제일기획에 관한 모든 것을 인터넷과 오프라인을 통해 샅샅이 찾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뭘 원하고 좋아하는지를 찾게 되잖아요?” 장씨는 ‘제일기획이 코면 코걸이로, 제일기획이 귀면 기꺼이 귀걸이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이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 적용했다. “제일기획이 뭘 바라는지를 알았기에 그것을 콕 짚어서 적어내려 갔어요.”

그런데 자소서를 쓰던 중 그는 엄청난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살아온 인생 그 자체가 스펙이구나.” 이전까지의 삶이 남과 비교하면서 부족함을 느꼈다면 이제부터는 ‘최고의 스펙은 나 자신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면접을 위해서도 ‘바람을 펴볼 것’을 요구했다. 그는 “기업체 여기저기에 입사원서를 내면서 공부한 경험이 우리 고객을 더 이해하면서 광고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면접관에게 설명했다”며 ‘면접쇼핑’도 할 수 있으면 많이 해볼 것을 권했다.

끝으로 그는 “취업은 입사를 위해 나를 세일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나 스스로 인생을 평가할 기회”라며 “참된 나 자신을 찾는 시간으로 활용할 것”을 당부했다.
한경 잡콘서트 찾은 광고 선배 3명의 '입사 스토리'
◆50곳서 퇴짜…그래도 나를 믿었어요

“졸업을 앞두고 50군데 원서를 썼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때의 절망감이란….” 다국적 광고대행사인 TBWA에서 꽤 알아주는 카피라이터가 된 김민철 차장(여·31)은 10년 전 아픈 기억을 털어놓았다. 둘째날 잡콘에 온 김씨는 “지금 여기 서 있는 저 자신도 아픔이 있었다”면서 “제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에게 위로와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고려대 4학년 2학기. 평생 철학만 할 줄 알았는데 그것으론 밥벌이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 4년간 열심히 도서관에서 책을 봤고,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견문을 넓혔기에 취업을 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하지만 원서를 쓰면 쓸수록 좌절은 늘어갔다. 공채시즌이 끝나갈 무렵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모 음료회사 영업면접장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토익도 없고 광고공모전에 응모해본 적도 없지만 스펙으로 증명되지 않은 나를 믿기로 하고 작은 홍보영상제작사에 무작정 들어갔어요.” 하지만 희망을 갖고 들어간 첫 직장은 녹록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공모전 경험도 없고 동아리 활동도 안 해본 사람이 뭘 아냐’며 김씨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거기서 인고의 1년을 보냈다. 상처가 됐다. 하지만 그 시간이 쓴약이 됐을까. 그즈음 김씨는 TBWA 카피라이터 공채에 응시, 마침내 2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벌써 8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젠 광고바닥에선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이 됐다. 그가 앉아있는 대학생들에게 당부한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다. “체력을 키우세요. 문학적 체력이든 예술적 체력이든 뭐든지… 어쩌면 카피라이터가 안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디서 무얼 하건 그 체력을 통해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는 입사 후 박웅현 CD(Creative Director)에게 들은 칭찬 ‘너 회의록 잘 쓴다’란 말에 힘을 얻어 기쁜 마음으로 지금까지 제작팀 회의록을 쓰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그 회의록을 정리해 한묶음으로 낸 책 《우리 회의나 할까》를 펴내기도 했다.
한경 잡콘서트 찾은 광고 선배 3명의 '입사 스토리'
◆A+ 학점 받으려 응모했던 광고 공모전

“사투리 쓰지 않기 입니다.” 앵~ 한 응시생의 엉뚱한 답변에 이노션월드와이드 1차면접 위원들은 놀랐다. ‘지금껏 살면서 끈기있게 한 게 뭡니까’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의 응시생들이 영어, 운동, 공모전을 이야기한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마지막날 잡콘에 온 조숙 이노션월드와이드 AE(여·28)는 “그 질문이 제겐 너무 소중한 질문이었다”면서 “포장이 아닌 진솔된 현재의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그렇게 대답했다”고 말했다. 사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그는 스무 살이 넘도록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대학도 전남대(신방과)에 들어갔다. 21살 어학연수를 위해 호주로 간 것이 ‘탈(脫)광주’의 시작. 이후 뮤지컬 공연기획사의 근무 경험은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 그는 광고공모전에 우연히 도전했다. “순전히 학점 때문이었죠. 교수님이 보해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입상하면 A+를 주신다고 하셨거든요.” 조씨는 첫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아 용돈도 벌게 되자 재미를 느끼고 몰입했다. 힘은 들었지만 묘하게 자꾸만 끌리는 마력을 느꼈다. 이어 KOSAC 광고경진대회, GM대우차 공모전, 그리고 마침내 현대자동차 마케팅 포럼에서도 1등을 거머쥐었다. 그는 입사해보니 외국계 대학 출신자도 많았고 ‘엄친아, 엄친딸’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벽이 너무 높다고 망설일 거면 빨리 접으라면서도 “ ‘나라고 못하겠어’란 정신이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볼 것”을 제안했다. “지금도 이노션월드와이드는 나만의 생각과 감각으로 다른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사람을 찾고 있어요. 거기에 도전할 후배를 기다리겠습니다”며 말을 맺었다.


◆ 광고회사 들여다보기

○광고대행사=광고주에게 광고를 의뢰받아 기획부터 실행까지 광고의 전과정을 맡아 진행하는 회사. 크게 기획팀, 제작팀, 매체팀, 인터랙티브팀으로 구성돼 있다.

○제작팀=TV, 인쇄·옥외 등 광고 전반의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하는 부서. CD·CW·AD·프로듀서로 구성된다.

○CD(creative director)=제작팀의 선장. 제작팀을 이끌며 광고제작과 관련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진다. 제작팀 내에는 다양한 CD가 있어 프로젝트에 따라 적합한 CD에게 일이 배정된다.

○CW(copy writer)=좁은 의미에선 광고 카피라이터를 지칭. 최근엔 캠페인 아이디어, 새로운 상품 네이밍까지 문자가 들어가는 모든 분야의 일을 한다.

○AE(account executive)=광고전략 기획자. 전체 컨셉트를 짜고 광고제작 단계별 추진 사항 등을 관리하며 광고주와 내부 스태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과 조율을 맡는다.

○AD(art director)=아트디렉터. 광고에 들어가는 비주얼에 관한 모든 일을 한다. 영상, 인쇄 광고 비주얼 컨셉트를 잡고 직접 작업한다.

○AP(account planner)=시장환경·소비자·브랜드 파워 등 분석을 통해 최선의 전략방향을 제시하는 마케팅 전략가.

○인터랙티브=온라인과 뉴미디어 광고에 대한 기획, 제작, 미디어 플래닝 등 인터랙티브 마케팅의 A부터 Z까지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는 디지털 전문가이다.

○프로모션(Promotion)=이벤트, 프로모션, 스포츠 마케팅, PR 등 다양한 수단으로 기업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하고, 각종 이벤트를 기획·집행하는 프로듀서.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