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방송인 "85세 현역 송해 선생님이 가장 부러워"
개그맨 이경규 씨(52)는 올해 데뷔 32년차인 예능계 최고참이지만 최근 다른 어느 후배 개그맨보다 왕성하게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씨가 KBS ‘남자의 자격’ 요리대회에서 개발해 상품화된 ‘꼬꼬면’은 지난해 최대 히트상품에 등극했고, 한 라면회사(팔도)의 사세까지 바꿔놨다. 판매수익으로 ‘꼬꼬면 장학재단’을 세우고, 이경규 라면 2탄으로 불리는 ‘남자라면’까지 만드는 등 방송계와 식품업계를 넘나들며 활약 중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4개의 프로그램도 대부분 3년을 넘은 장수 프로그램이 됐다.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 30년 넘게 ‘예능 지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이씨는 “라면을 참 잘 해서 자주 찾는 집”이라며 서울 학동사거리에 있는 막걸리바 ‘청담1막’을 인터뷰 장소로 콕 찍었다. 통유리 건물 4층에 카페같이 현대적 느낌으로 꾸민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꽤 알려진 퓨전 주점이다.

“꼬꼬면 만든 건 내 인생 최대 행운”

이씨는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남자의 자격 ‘식스팩 만들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식사량을 확 줄인 데다 감기 몸살까지 겹쳤다고 했다. “두 달째 아침엔 밥 반 공기, 점심엔 고구마와 두유, 저녁엔 바나나와 계란 등만 먹고 있어요.” 그는 라면과 보쌈을 푸짐하게 주문하더니 “저는 먹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헉, ‘맛있는 만남’인데 주인공이 못 먹는다니.

이씨는 “음식은 육·해·공 다 좋아하지만 면 종류를 참 좋아한다”며 “꼬꼬면 5탄까지 만들어 라면사(史)에 한 획을 그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모교인 동국대 서울캠퍼스 근처에 있는 냉면집 ‘필동면옥’도 수십 년 된 단골집이다.

지난해 라면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한 꼬꼬면 얘기부터 안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만들게 된 걸까. “라면대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굉장히 복잡한 요리들을 준비해 올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라면에선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되거든요. 화려하게 한다고 소고기 듬뿍 넣으면 그게 소고기 요리지 라면입니까. 라면은 라면의 취지에 맞게 간편해야 해요. 전 일본에서 유학할 때 흰 국물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걸 접목한 게 꼬꼬면이었어요.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맛을 보면 ‘요즘 이런 게 먹히겠구나’ 하는 것은 대강 감이 옵니다.”

방송 외에 라면 개발, 외식 사업, 영화 제작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가장 성취감을 느낀 일로 ‘꼬꼬면’을 꼽았다. “제가 이 세상을 떠나면 남는 건 라면밖에 없지 않느냐”며 “라면을 만든 건 저한테 굉장한 행운”이라고 했다.

“돈 욕심 없다… 오래 일하는 게 재테크”

꼬꼬면의 대성공 이후 일반 국민들은 이씨가 얼마나 벌었는지를 집요하리만치 궁금해한다. 그는 “그런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겠지만 라면 한 봉지에 얼마나 하겠느냐”며 “생각처럼 많은 돈이 아니다”고 말했다.(이씨의 꼬꼬면 로열티는 출고가의 1% 수준이며 이 중 상당 부분을 장학재단에 환원한다.)

인터넷에선 어느 연예인이 어디 부동산을 사고, 어떤 주식에 투자했다는 등의 재테크 얘기도 늘 화제다. 연예계 생활 32년차의 재테크 노하우가 궁금했지만 이씨는 손사래부터 쳤다. “그런 것 전혀 안 합니다. 별 관심이 없어요. 건강이 재테크고, 열심히 일하는 게 재테크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선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이 들어 돈 많이 모아놓고 집에 있으면 뭐합니까. 너무 빈곤하면 안 되겠지만 돈이 너무 많으면 적도 많아져요.” 그래서 ‘전국노래자랑’ MC인 송해 씨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같다고 했다. “선생님이 나이 60이 다 돼 전국노래자랑을 맡아 지금 여든 다섯인데도 건강하게 일하고 계신 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이씨는 가방에서 계란 두 개와 두유 한 병을 꺼냈다. 그의 저녁식사다.

지난해 하루 두세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은 그는 올 들어 몸을 만들기 위해 술까지 끊었다. 운동을 시작한 뒤 두달여 동안 몸무게가 2㎏ 줄었다고 한다. 유혹이 많을 텐데. “유혹 많죠. 하지만 저는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 장점을 갖고 있어요. 마음먹고 해내는 데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 꼭 즐겁지만은…”

이경규 방송인 "85세 현역 송해 선생님이 가장 부러워"
이씨는 지난 1월 ‘남자의 자격’에서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먹은 지 4개월 정도 됐다”고 밝혀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때때로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와 엘리베이터도 못 탔지만 방송에 영향을 줄까봐 참았다는 고백. ‘다혈질 캐릭터’가 상징인 그가 사실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에서 반향이 더욱 컸다.

“저보다 큰 병을 앓는 분들이 많아요. 일부러 얘기하려 했던 게 아니고…. 녹화 당시 상황이 그렇게 돼 어쩔 수 없이 얘기한 거였어요.” 약을 먹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말끔히 완쾌된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전문가 말을 들어보면 공황장애는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내분비계 호르몬에 이상이 오는 겁니다. 내가 방어를 하지 않아도 호르몬이 나와서 스스로 과도하게 방어를 해 내가 내 몸과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거예요. 증상은 사람마다 다 다르대요.”

그러면서 그는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의 고충을 들려줬다. “스트레스는 어느 직업이나 다 있는 것이지만 알려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참 힘들어요. 젊었을 땐 좋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잘 못 돌아다닙니다. 협소한 공간에서 같은 직업 가진 사람만 만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있습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이 날 알아본다는 게 항상 큰 즐거움만은 아니에요.”

인터넷 댓글을 가끔 읽지만 악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고 했다. “속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가 많아서예요. 그 공간은 원래 자기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채 남을 칭찬하기도, 헐뜯기도 하는 곳인데 하지 말라면 안 하겠어요? 그리고 어떻게 모두 날 좋아합니까. 나도 TV 보면 주는 것 없이 미운 애들이 있는데. 전 우리나라 인구 5000만명 중 최소 1000만명은 절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일해요.”

“대화 잘하는 법은 공통분모 찾는 것”

이씨는 유명인사들이 나와 마음속 얘기를 털어놓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도 진행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힐링’(마음의 치유)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그냥 하루가 평온하게 지나가는 게 힐링인 것 같다”며 “욕심을 내려놓고 많이 베풀어 오랫동안 건강하게 방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답했다.

시청률 상승세를 타고 있는 힐링캠프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잇따라 출연해 화제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가려서 하는 유력 정치인들과 대화를 푸는 게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다 같은 사람인데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받아쳤다.

“다양한 사람들과 방송을 하지만 대화를 잘 이끄는 법은 똑같습니다. 가능하면 공통분모를 가진 이야기를 하는 것과 지금 저 사람이 재미있어한다, 재미없어한다를 파악하는 거예요. 어떤 면에선 동물적 감각인데…. 우린 직업이고 숙달이 됐으니 그걸 못하면 골 때리는 거죠.”

30년 넘게 롱런하는 비결에 대해 그는 “대박을 칠 때 아주 강하게, 확실하게 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먹고 산다 하잖습니까. 터뜨릴 때 세게 터뜨리면 오래 가죠. 찔끔찔끔 잘 하면 사람들은 기억 못 해요.”

“영화 애착, 돈 때문도 미련 때문도 아니다”

약속한 인터뷰 시간이 끝나간다며 매니저가 눈치를 준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과 관련한 미팅이 잡혀 있다고 했다. 이씨는 방송가에선 빅히트작이 많지만 영화판에선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이씨는 ‘왜 영화를 계속 만드느냐’는 세간의 궁금증에 답답한 듯했다. “영화는 제가 재밌으니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통쾌하잖아요. 영화로는 돈 한 푼 벌 욕심 없어요.” 미련이 남아서는 아닐까. “아니, 미련만 갖고 수억원을 날릴 수 있습니까? 등산하는 사람들이 산이 좋아서 가듯, 저도 제 스스로 영화가 좋아서 하는 겁니다. ” 지금 준비 중인 새 영화는 연말쯤 개봉할 예정이다.

이씨는 꼬꼬면 장학재단을 통해서도 영화, 방송 등에 재능 있는 청소년을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기자는 먹으며 질문하고, 주인공은 참고 대답하는 ‘괴상한 인터뷰’가 된 게 못내 미안했다. 이씨는 “배고프지만 견딜 만하다”고 했다. “식단을 조절하고 매일 한 시간 반씩 운동하니 혈당도 좋아지고 복부지방도 많이 빠졌어요. 수도승처럼 사니까 전 좋습니다.” 이렇게 독하게 마음먹고 만드는 그의 ‘명품 식스팩’이 기다려진다.
이경규 방송인 "85세 현역 송해 선생님이 가장 부러워"
방송인 이경규의 단골집 - 청담 1막

신개념 막걸리바…안주로 '매운 짬뽕 수제비' 일품

이경규 방송인 "85세 현역 송해 선생님이 가장 부러워"
‘신개념 프리미엄 막걸리바’를 표방한 퓨전 주점으로, 내부에서 패션쇼를 열기도 할 정도로 현대적 느낌의 인테리어를 갖췄다.

대표 막걸리인 ‘하얀 연꽃 생막걸리’는 이름처럼 희고 고운 빛깔이다. ‘배다리 생막걸리’는 진한 맛을 좋아하는 주당들에게, ‘자색 고구마 막걸리’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막걸리 가격은 300㎖ 7000원, 550㎖ 1만2000원, 800㎖ 1만5000원 선이다.

대중의 편견을 깨는 퓨전 막걸리 안주도 별미다. 폰즈와 숙주를 곁들인 닭튀김 ‘갈릭 유린기’(1만7000원), 구운 가지와 파인애플을 가미한 차돌박이 구이 ‘팬 프라이 가지 차돌박이’(1만1000원), 해물 육수로 맛을 낸 얼큰한 속풀이 수제비 ‘매운 짬뽕 수제비’(1만5000원) 등이 인기다.

서울 논현동 학동사거리 한복판, CGV청담씨네시티 맞은편 베니건스 건물 4층에 있다. 단체 손님을 위한 룸이 2개 있다. 영업시간은 오후 5시~오전 2시. 일요일은 쉰다. (02)548-5529

임현우/김철수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