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행원' 면접용 수첩엔 3년 준비한 꿈 빼곡
“면접관들 앞에서 잘 설명하려고 만든 1분 스피치 수첩이에요. 한 번 보실래요?”

7일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2012 우리은행 고졸 채용설명회’. 대구여상 3학년에 다니는 심명아 양은 기자에게 대뜸 노트를 한 권 내밀었다. 자신이 취득한 자격증 목록과 함께 우리은행 현황과 역사에 대한 메모가 빼곡했다.

이날 은행권에서 처음 열린 고졸 채용설명회에는 전국 특성화고 학생 400여명과 교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대성여상과 경북여상, 경기여상, 부산진여상 등 상업학교뿐만 아니라 부산컴퓨터과학고, 서울문화고 등의 명찰도 눈에 띄었다. 우영길 부산문화여고 교사는 “대학 진학 외에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순기 부산컴퓨터과학고 교사는 “처음엔 국가에서 고졸채용을 확대하라니 구색만 맞추는 것이 아닐까 우려했던 게 사실”이라며 “은행권의 고졸 채용이 정착되면서 학교 내 분위기도 밝아졌다”고 전했다.

서울역 앞 우리은행 서울스퀘어지점에서 근무하는 김지혜 주임(19)은 고졸 행원 선배로서 취업전략에 대해 강연했다. 김 주임은 ‘면접에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라’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라’ 등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직접 상담부스에 앉았다. 이 행장은 “고객을 상대하는 은행원으로서 항상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적어도 내가 있는 동안은 대졸자와 고졸자 간 차별을 없애도록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학생들은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성덕여상의 채송이 양은 “은행권은 복지가 좋고 안정적이라 선호하고 있다”며 “친구들이 은행에 들어가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공부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서울문화고에 다니는 박상현 군은 “평소 경제에 관심이 많아 은행원이 되려고 한다”며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이런 행사가 매년 열리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 85명의 고졸 행원을 채용했던 우리은행은 올해 200명으로 규모를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 중 40명을 고졸 남자 행원으로 뽑을 계획이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은행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업은행은 작년 69명에서 올해 100명으로, 산업은행은 48명에서 80명으로 고졸 채용 규모를 각각 확대하기로 했다. 외환은행도 작년보다 20% 늘려 40여명의 고졸 행원을 뽑는다.

고졸 행원들은 우선 2년간은 비정규직으로 채용돼 ‘주임’ 직위를 받고 주로 지점 창구에서 텔러로 일하게 된다. 각종 수당을 합한 초봉은 연 2500만원 선이다. 정규직이 되면 대학 학자금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조재길/윤희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