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레이 EV' 양산…2015년엔 수소차 개발"
"전기차 '레이 EV' 양산…2015년엔 수소차 개발"
국내 최초의 양산형 전기자동차 ‘레이 EV’ 출시를 한 달 앞둔 지난해 11월. 이기상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 환경차시스템 개발실장(상무)은 핵심 경영진으로부터 긴급 호출을 받았다. 미국에서 GM의 전기차 ‘쉐보레 볼트’가 배터리 화재 문제로 곤욕을 치르던 때였다. 하지만 이 실장은 배터리 안전에는 자신있었다.

“배터리를 냉각하기 위해 화재의 원인이 된 냉각수 대신 공기를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4중 안전 설계도 모자라 혹시 모를 침수에 대비해 차를 이틀 동안 수조에 담갔죠. 그 다음 거꾸로 매달아 수십회 회전시키기도 했어요. 이렇게 철저히 점검하다 보니 화재 방지 특허도 획득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레이 EV’다. 28개월 동안 1000억원을 투입했다. 이 실장은 레이 EV가 탄생하기까지 지난 6년을 돌아보면 말 그대로 암흑 같은 터널이었다고 술회했다. ‘하이브리드’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상황에서 자체 기술로 전기차 개발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83년 현대차에 입사해 20여년간 가솔린 엔진 연구에 몰두했던 이 실장은 2005년 친환경차 개발에 뛰어든 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 수천억원을 쏟아붓는다는 데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주위에서는 선진 기술을 지닌 자동차 업체와 협력하는 게 쉽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실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선진 업체들은 핵심기술은 감추고 제품 팔기에 급급하더군요. 계속 비싼 돈을 주고 다른 회사의 시스템을 사서 써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죠.”

이 실장은 기술력을 갖추는 일이 최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수평적 기술 제휴란 없습니다. 2005년 BMW, GM, 크라이슬러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공동개발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양산을 못하는 것을 보세요. 결국 기술을 선점한 강자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독자적인 기술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살 길이었습니다.”

당시 현대·기아차의 연구 인력은 도요타의 5분의 1인 200명에 불과했다. 주변에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했다. 지난해는 적은 인원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개발실을 통합하고 전기모터, 모터 제어기, 배터리 등 핵심 부문끼리 묶었다. 그리곤 머릿수가 부족한 만큼 이를 악물고 매달렸다. 이 실장은 “야근하면서 먹은 컵라면만 몇 트럭은 될 것”이라고 했다.

2010년 9월. 현대차는 국내 최초로 고속 전기차 ‘블루온’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목표는 더 높았다. 수요가 있으면 언제든 전기차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했다. 현대·기아차는 부품 모듈화를 통해 일반 차량과 똑같은 라인에서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플랫폼을 이용해 올해부터 ‘레이 EV’ 2000여대를 기아차 브랜드로 생산한다. 전기차의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실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기술이 발전하면 도심 근거리 교통수단은 전기차, 중거리는 하이브리드, 장거리는 수소연료전지차가 차지할 겁니다. 2015년에는 수소연료전지차도 생산할 계획입니다. 후발 주자로 시작해 우리 힘으로 특허도 따내고 전기차 양산을 이뤄냈으니 자신있습니다. 곧 우리 차가 친환경차 시장을 선도하는 중심축이 될 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