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대부’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향년 64세를 일기로 30일 오전 5시31분 타계했다.



김 상임고문은 수년째 앓아 온 파킨슨병에 이어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 2차 합병증에 의한 패혈증으로 한 달 만에 숨졌다. 병세는 뇌정맥혈전증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폐렴·신장염 등 합병증이 겹치면서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으로 지명수배된 것을 시작으로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김 상임고문은 ‘민주화의 대부’로 불렸다. 그의 청·장년 시절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등 반독재 운동에 몸을 담으면서 수배와 투옥으로 점철됐다.


군사정권 시절인 1985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 등에게 10차례 고문을 받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만성적으로 그를 괴롭히던 파킨슨병도 고문 후유증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민주정부 수립 이후 김 상임고문은 재야 출신 정치인들의 좌장으로서 대권주자로 거론됐으나 경선에서 중도하차 하는 등 꿈을 이루진 못했다.

1995년 당시 민주당 부총재로 제도 정치에 입문한 뒤 이듬해 15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서울 도봉갑에서 3선에 성공했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아름다운 꼴지를 기억해 달라”는 양심고백과 함께 경선을 중도 포기한 사례는 유명하다. 이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거치며 탁월한 논리력과 특유의 개혁성을 갖춘 정치인으로 인정받았다.

18대 총선 낙선 후에는 민주 대통합을 시대적 과제로 여기고 통합의 산파 역할을 자처했다. 내년 총선에서 재기를 모색하던 그는 지난달 말 건강이 악화되면서 '반(反)보수 대연합'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유족은 로버트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한 부인 인재근씨와 1남1녀(병준ㆍ병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한경닷컴 박은아 기자 sn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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