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가 점령한 광장에 휩쓸려선 안돼…스스로 길 찾고 고민해야"
"소수가 점령한 광장에 휩쓸려선 안돼…스스로 길 찾고 고민해야"
지난 1일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있는 부악문원. 소설가 이문열 선생(63)이 후진 양성을 위해 만든 곳이다. 추운 날씨에도 선생을 찾아온 문인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인터뷰 약속 시간인 오후 3시가 다 됐을 무렵 선생은 “고향에서 친구들이 올라와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어쩌나”라며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그의 서재를 둘러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손때 묻은 원고지에 잉크 글씨가 선명하다. 1981년에 나와 청년들의 필독서가 됐던 ‘젊은 날의 초상’도 눈에 띄었다.

“돌아가자. 이제 이 심각한 유희는 끝나도 좋을 때다. 바다 역시도 지금껏 우리를 현혹해온 다른 모든 것들처럼 한 사기사에 지나지 않는다. 신도 구원하기를 단념하고 떠나버린 우리를 그 어떤 것이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중략) 존재가 그 지속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젊은 날의 초상’ 중에서)

그는 젊은 날의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정리한 이 소설에서 치열한 고민과 방황의 끝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서재 문이 열리면서 그가 들어섰다.

▶‘2040’을 비롯한 젊은층의 불만과 분노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청년 문제’라고 거창하게 하면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세계나 인터넷 문화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 우선 젊은이들이 왜 불만을 갖는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기성 세대와 비교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큽니다. 기성 세대들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교육을 받았는데도 왜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지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대 간 갈등은 사고나 행동 양식, 이념 등이 아닌 경제적 불평등 때문에 생기고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 방식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청년들의 의사 표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오늘날 시대 정신을 모으고 의견을 전달하는 매체는 인터넷이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입니다. 젊은이들의 불만이 직접적이고 폭발적인 방식의 새로운 매체들과 결합하면서 훨씬 증폭되고 있습니다. 기성 세대와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은 이해가 되지만 이런 방식이 맞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특히 집단 의사 표출 방식은 대단히 위험해 보입니다. 현재 젊은이들이 채택하고 신뢰하는 소통 방식이 정말 건강하고 믿을 만한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 등을 통한 대중의 오류를 지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흔히들 지금의 인터넷 세상을 ‘광장’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광장에는 이른바 ‘다수 의견’이 존재합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모여 다수 의견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인터넷에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습니까.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냥 몇 번씩 접속해서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것만으로는 광장에 진정으로 참여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소통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소통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내 의견을 이야기하면 남의 의견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SNS를 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듣기만 하는 ‘수신기’에 불과합니다. 나쁘게 말하면 세뇌나 선동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광장을 ‘점령’하고 있는 소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이러저러한 평가를 내리면 나머지는 그대로 따라갑니다. 집단 지성으로 위장한 소수는 극히 위험한 존재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주십시오.

“고대 로마에서 시저가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브루투스는 그를 죽였습니다. 이후 브루투스는 로마 시민 앞에서 “시저는 나를 사랑했지만 로마를 위해서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성적인 명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토니우스가 로마 시민에게 남기는 시저의 유서를 읽고, 그의 피묻은 옷을 보여주자 브루투스는 곧바로 역적이 돼 버렸습니다. 그게 바로 광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휩쓸리고 감성적이 될 수 있습니다.”

▶광장을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까닭은 진실이 억압에 가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말에는 이 같은 자유를 보장해줘서는 안 됩니다. 미국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주장은 과장과 허위인 것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관련해서도 ‘맹장염에 걸리면 900만원이 들어간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나돌았습니다.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화가 나고 짜증도 날 수 있겠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소통 자세가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다수로 보여지는 의사에 과연 스스로 동의를 나타낸 적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단지 다수처럼 보이기 때문에 무작정 따라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모두가 동의를 표했다면 그게 어떤 의견이든지간에 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동의한 적이 없는데 그게 마치 우리 모두의 의견이라고 한다면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청년의 모습입니다.”

▶정치권이 청년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여당이 우선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기존 정체성을 지키면서 변해야 하는데 야당을 너무 따라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분별한 복지 정책 등 한마디로 포퓰리즘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당의 성격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면 국민들이 어떻게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잘못을 했을 때는 인정도 하고, 필요할 때는 용기있게 설득도 하면서 진정성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요즘 젊은이들은 나쁘게 말하면 남의 것을 너무 잘 받아들입니다. 고민하는 대신 끊임없이 타인의 신호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신호는 얼마든지 엉터리일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감각적이고 다분히 꾸며진 다수에 의지해서는 곤란합니다. 나는 앞으로 많아야 30년 더 살 것입니다. 글을 쓸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죠. 하지만 젊은이들은 다릅니다. 수십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자신들이 살 세상을 무책임하게 놔둬서야 되겠습니까. 남의 말만 듣지 말고 스스로 길을 찾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 이문열은

1948년 서울 출생. 1950년 한국전쟁 때 아버지가 월북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안동고교를 중퇴한 뒤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서울대 사범대 국어과에 진학했다.

1977년 매일신문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대표작으로는 ‘사람의 아들’(1979)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1980) ‘그해 겨울’(1980) ‘어둠의 그늘’(1981) ‘젊은 날의 초상’(1981) ‘황제를 위하여’(1982) ‘금시조’(1983) ‘레테의 연가’(1983) ‘영웅 시대’(198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0) ‘호모 엑세쿠탄스’(2006)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세종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지금은 부악문원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이천(경기)=서욱진/이승우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