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간 체질변화, 정책기조 보수 선회할 듯
사법연수원 출신 첫 대법원장 탄생 가능성

6년 만에 이뤄지는 사법부의 권력교체가 임박했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사법부 수장에 오른 이용훈 대법원장은 오는 9월24일로 임기(6년)를 다하고 물러난다.

이 대법원장은 비교적 진보적인 원칙론 속에 `공판중심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강도 높은 사법개혁을 추진해왔으며, 불구속 재판 원칙을 강화해 검찰과도 적잖은 갈등이 있었다.

이 대법원장 체제는 검찰과 행정부에는 불만스러운 면이 많았지만 무죄추정 원칙의 확립과 피고인 인권 보장 등에 있어서 진일보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받는다.

이 대법원장이 물러나고 차기 원장이 입성하면 사법부 내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사법정책의 기조가 진보에서 보수로 선회하고, 다소간의 긴장관계가 유지됐던 이명박 정부와 사법부의 구도도 재정립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차기 대법원장은 올해 2명, 내년 4명의 대법관에 대한 임명제청권을 행사하게 되기 때문에 단기간 안에 대법원의 체질변화와 세대교체는 물론 일선 법원에도 고위법관 쇄신 인사를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력한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전·현직 대법관들은 이 대법원장보다 대부분 10기수 이상 아래로, 최초의 사법연수원(1971년 설립) 출신 대법원장이 탄생할 가능성이 커 사법부는 내면과 외형 모두에서 실질적인 세대간 권력 이동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이명박 대통령은 이르면 다음 달 중순, 늦어도 내달 말까지는 차기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 정책노선 궤도수정 = 대법원장은 대법관 13명에 대한 임명제청권과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지명권, 전국 법관 2천500여명에 대한 인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 사법정책은 물론 법원 전반의 이념적 지형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법원장은 만 40세가 넘는 15년 이상 경력의 법조인 가운데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지명권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실용적 보수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출범 4년째에 이르도록 사법부와 크고 작은 충돌을 빚어야 했다.

참여정부에서 구성된 사법부 수뇌부가 정권 교체에도 기존 정책노선과 판결의 기조를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무엇보다 차기 대법원장을 현 정부의 이념적 지향성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 `코드'가 맞는 인물로 낙점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 대법원장 체제에서 굳혀져 온 일부 사법정책의 방향 수정이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법부가 상당한 부담을 안으면서도 꾸준히 해결해온 과거사 청산 노력 등에도 약간의 궤도 선회가 있을 것으로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법원장 체제하에서 활약했던 진보 성향 대법관들이 임기를 마치면서 하나 둘 퇴장하는 대신 온건·보수성향의 대법관이 부각되면 대법원 판결에 보수적 색채가 짙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대표적인 진보 성향으로 꼽혔던 박시환·김지형 대법관이 올해 11월 물러나고 내년 7월 박일환·김능환·전수안·안대희 대법관까지 퇴임하면 참여정부 시절 임명됐던 대법관들이 전부 교체돼 대부분 현 정부에서 선임된 인사들로 채워지게 된다.

◇차기 대법원장 후보는…첫 연수원 출신 예고 = 제14대 이용훈(70.고등고시 15회) 대법원장을 끝으로 고등고시 사법과 출신으로 서울대 사법대학원이나 사법관 시보 제도를 거친 원로 법관들이 물러나고, 현대적 법조인 양성기관인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최초의 대법원장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현재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양승태(63.부산.경남고.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관, 박일환(60.경북.경북고.5기)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차한성(57.경북.경북고.7기) 대법관, 김용담(64.서울.서울고.1기) 전 대법관 등 4명이 모두 연수원 출신이다.

지난 2월 6년 임기를 마친 양 전 대법관은 퇴임 전 온건하고 안정지향적 판결로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이명박 정부의 코드에 부합하는 인물로 꼽힌다.

재판 실무와 사법행정, 조직관리에 두루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법원 내에서 '영국신사'로 불리는 박 처장은 합리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후배 법관들의 신망이 두텁다.

차 대법관은 유력 후보 중 가장 젊어 패기를 내세울 수 있고 무엇보다 강한 추진력이 장점으로 평가된다.

박 처장과 차 대법관은 현 정권 연고지인 `TK(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점이 강점이기도 하지만 지역편중 인사라는 지적으로 인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추천을 받은 김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 출신으로 사법행정 능력을 인정받았고 개혁적인 사고와 실행력을 가졌다는 평이다.

대형 로펌(세종)에 몸담고 있어 약점으로 지적되지만, 퇴임 후 1년 가까이 변호사 활동을 늦추는 등 전관예우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한 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은 김능환(60.충북.경기고.7기) 대법관의 이름도 자주 오르내린다.

김 대법관은 재판 이론과 실무에 정통하고 대표적인 `청빈 법관'으로 통한다.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으로 법조계 전반의 신망이 두터운 목영준(56.서울.경기고.10기) 헌법재판관과 첫 여성 대법관이라는 기록을 남긴 김영란(55.부산.경기여고.10기) 국민권익위원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2003~2004년 대선자금 사건을 파헤쳐 `국민검사'로 불렸던 안대희(56.경남.경기고.7기) 대법관도 후보로 거론된다.

이밖에 변협에서 추천한 손지열(64.대구.경기고.사법시험 9회) 전 대법관, 고현철(64.대전.대전고.사시 10회) 전 대법관과 우창록(58.경북.문화고.6기) 변호사도 잠재적인 후보군에 이름이 올라 있다.

손 전 대법관(김앤장)과 고 전 대법관(태평양)은 대형 로펌 출신으로 전관예우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있지만 법원과 오래 거리를 둬 사법개혁에 유리하다는 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