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명소를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인이나 일본인 관광객과 심심찮게 마주친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나라 국민이 예술품을 대할 때 보이는 행태를 통해 두 나라가 얼마나 '가깝고도 먼 나라'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일본인들은 가이드북을 펴들고 사뭇 진지하게 대상을 관찰하고 또 비교적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학구적 자세를 보인다. 때론 작품이나 건축물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주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아 약간은 외골수의 이미지를 풍긴다.

한국인들은 뭔가 좀 괜찮다 싶으면 연신 호들갑을 떨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 후 제대로 된 감상행위는 생략한 채 뭔가에 쫓기듯 금방 자리를 뜬다. 대개의 경우 방문지에 대한 진지한 탐색보다는 명소를 방문했다는 인증 샷을 남기는 데에만 온 정신을 쏟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카를 슈피츠베크(1808~1885)의 '캄파냐의 영국인들'은 유럽에서 만난 두 나라 국민의 개성적인 관광 행태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이 작품 속의 영국인들은 일본인과 지극히 닮았다.

화면을 보면 '그랜드 투어'에 나선 다섯 명의 영국인이 한창 캄파냐의 폐허를 거닐며 고대 로마시대의 옛 자취를 더듬고 있다. 캄파냐는 로마 주변을 둘러싼 저지대로 로마시대 이래 라티움이라 불린 곳이다. 이곳은 로마시대에 중요한 농업 및 주거지로 번성했으나 중세시대에 말라리아 창궐과 물 공급 부족으로 오랫동안 버려졌다. 그 사이 화려했던 고대의 신전과 귀족의 저택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고 건물의 잔해 위엔 푸른 이끼가 과거의 영화를 가리는 망각의 커튼처럼 두텁게 내려앉았다.

그런 퇴색된 유산이 환기하는 짙은 우수와 주변의 자연이 풍기는 목가적 아름다움을 재발견한 것은 18세기 말,19세기 초 이탈리아를 찾은 영국과 독일 예인들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상이었던 괴테는 그 선두주자 중 한 사람이었는 데 그의 캄파냐 방문 모습은 독일인 친구 티슈바인이 그린 초상화에 선명히 기록됐다. 폐허로 가득한 이곳 풍경은 로마로 유학온 외국 화가들의 영감을 자극했고 그 결과 서양미술사상 가장 많이 그려진 장소가 됐다. 이곳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그랜드 투어에 나선 사람들에겐 필수 여행코스의 하나가 됐다.

'캄파냐의 영국인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면 중앙의 세 사람이다. 지금 막 인솔자로 보이는 왼쪽의 탑햇(원통형의 신사용 실크 모자)을 쓴 중년 남자가 오른쪽의 젊은 남녀에게 손짓 발짓을 해가며 폐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두 남녀는 책을 펴들고 진지하게 인솔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 관광객이라기보다 교수의 인솔 아래 현장학습에 나선 대학생 같다. 두 남녀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하고 고지식해 보여 웃음이 터질 지경이다.

그들 뒤편의 한 여성은 스케치북을 펴든 채 폐허의 유적지를 열심히 스케치하고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진 그녀는 의자까지 준비해 와 아예 이곳에 눌러앉을 태세다. 오른쪽의 건물 잔해에 기댄 남자는 이들과는 달리 뭔가 상념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행을 수행하는 하인이다. 양 팔에 잔뜩 들린 물건들이 그의 처량한 사회적 지위를 말해준다.

결국 이 그랜드 투어 일행은 로마시대의 유물 자체에만 푹 빠져 정작 이 유물들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이것들이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로맨틱한 운치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을 그린 슈피츠베크는 독일 비더마이어 시대(19세기 전반)를 대표하는 시인 겸 화가로 책벌레,건강 과민증 환자처럼 주위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미시적인 세계에 빠진 편집증의 괴짜들을 코믹하고 풍자적으로 그렸다.

그 중에서도 '가난한 시인'은 라인강 너머에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 필적할 정도로 유명한 그림이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다락방에서 추위와 배고픔도 잊은 채 입에는 펜을 물고 손가락으로 시의 운율을 계산하는,세상과 담을 싼 고지식한 시인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장기는 풍경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돼 감상자는 그의 그림 앞에 서기 전에 미리 허리띠를 풀고 웃을 준비를 해야 한다. '캄파냐의 영국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로 그런 외골수 시리즈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슈피츠베크가 이런 괴짜들을 풍자할 처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지독한 외골수이자 편집증 환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외부세계와 담을 쌓은 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평소 금전출납 문제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해서 10원 하나 빠트리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들은 결국 사돈 남 말한 셈이었다.

여행의 계절이다. 과거 그랜드 투어에 나섰던 영국인들이 갖고 있던 진지함을 배우되 전체적 맥락도 놓치지 않는 그런 여행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지 못할 바에는 들뜬 분위기의 '인증 샷' 관광보다 차라리 슈피츠베크 그림 속의 진지한 외골수가 낫다.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

◆알림='인문학 산책'면은 한 주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