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여행] 이 곳 솔뫼서 뛰놀던 코흘리개 김대건…스물다섯의 순교를 상상이나 했을까
우강면 송산리,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1822~1846) 탄생지를 찾아간다. 2004년에 복원한 생가가 나그네를 맞는다. 솔뫼를 병풍 삼아 앉아 있는 'ㄱ'자형 팔작지붕 기와집이 적요롭다. 김대건이 정해박해(1827) 때 용인 골배마실로 이사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그는 24세(1845) 때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 '은이' 마을에 공소를 차려 선교활동을 벌이다 체포돼 스물다섯 살에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의 동상을 찾아 솔뫼로 올라간다. 갓 태어난 햇살이 비스듬히 비쳐드는 아침의 솔숲은 신성하다. 순교자 상은 솔숲에 우뚝 서 있다. 순교자의 정신적 비장미가 풍겨온다.

이 솔뫼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놀던 어린시절만 해도 다가올 순교의 운명을 어찌 짐작이나 했을 것인가. 그가 옥중에서 조선교구장인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는 "저희들의 손과 발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사옵고 목에는 칼이 채워져 있사오며 뒤를 보러 갈 적에는 긴 밧줄을 쇠사슬에 매어서 세 사람이 그 끝을 쥐고 있사옵나이다"라고 적혀 있다.

기념관을 찾아 미리내 성요셉 성당에 안치돼 있는 아래턱뼈,무덤을 덮었던 횡대(橫帶 · 널조각),머리카락 등을 재현한 전시물들을 돌아본다. 순교는 아름다움을 잉태한 비극이다. 순교야말로 가장 순수한 정신의 결정체이자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몸을 옭죄어 오는 고통을 견디고 증조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죽음으로써 끝내 신앙을 지켜낸 김대건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아름다운 청년' 김대건을 가슴에 품고 합덕읍 읍내리 합덕제(合德堤)로 향한다. 합덕 평야에 농업용수를 대주던 1771m에 달하는 저수지다. 왕건과 싸우면서 이곳 합덕에 주둔했던 견훤의 군사 1만2000명이 쌓은 저수지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김제 벽골제,황해도 연안 남대지와 더불어 3대 방죽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그러나 196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예당저수지가 축조된 후로는 관개지로서의 기능을 접었다. 일직선을 쌓은 김제 벽골제와 달리 부분적으로 굴곡지게 쌓은 것이 특징이다.

합덕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합덕성당으로 간다. 1929년에 지은 이 성당은 특이하게 정면의 종탑이 두 개다. 외벽은 붉은 벽돌,창둘레와 종탑의 각 모서리는 회색벽돌로 쌓았는데 외관이 아름답다. 두 개의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들판과 논두렁을 타고 얼마나 아름답게 퍼져 나갔을까.

두견주로 잘 알려진 고장 면천면으로 향한다. 면천면의 초입에 있는 복원한 건곤일초정과 면천향교를 들러 면천초등학교 옆 군자지로 간다. 옛 면천 군수들의 선정비를 일별한 후 돌다리를 건너 1994년에 다시 지은 군자정에 오른다. 못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나쁘지 않지만 연못을 준설하면서 바닥에 잔돌을 까는 바람에 예전의 무성했던 연꽃이 사라져버린 게 못내 아쉽다.

면천초등학교 운동장 가에는 고려 개국공신이자 면천 복씨 시조인 복지겸의 딸이 심었다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다. 복지겸이 불치의 병에 걸리자 딸이 아미산에 올라 백일기도를 드렸는데 산신령에게서 '아미산의 진달래꽃과 안샘의 물로 술을 빚어 100일을 숙성시킨 후 마시도록 하고 뜰에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들이라'는 계시를 받고 그대로 행해 병을 고쳤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산신령이 아이디어를 내고 지극한 효심이 그 아이디어를 실행한 결과 만들어진 게 면천두견주(중요무형문화재 제86-2호)인 셈이다. 진달래 꽃술에는 독성이 있으므로 두견주를 담글 때 꽃술이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면천면사무소 앞에는 복원한 면천읍성이 있다. 면 소재지를 거의 감쌌던 성벽이 허물어져 다시 만들었다. 성돌을 빼다가 원동리 순원저수지 둑을 쌓는 데 썼다니 한심한 일이다.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상왕산 영탑사를 찾는다. 영탑사는 발소리조차 크게 내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조용한 절집이다. 대웅전에는 영탑사를 대표하는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보물 제409호) 대신 다른 삼존불이 좌정하고 있다. 고려불상의 특징을 보여주는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은 도난당해 일본까지 건너갔다 온 이력 때문에 모처에 따로 보관 중이라고 한다.

측간문 옆에는 높이 60㎝의 조선시대 범종이 걸려 있다. 조선 영조 37년(1760) 예산 가야사 법당에 있던 금종을 녹여 만든 종이다. 가야사는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쓰려고 불살랐던 절이다. 오른쪽 언덕에 있는 유리광전 안 암벽에는 돋을새김한 높이 3.5m의 거대한 약사여래상이 좌정하고 있다. 약사불로 칭하지만 약합 같은 지물이 없어 정확하지 않다. 얼굴에 비해 불신이 너무 커서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자아낸다.

유리광전 뒤 바위 위에는 7층 석탑이 서 있다. 5층만 남아 있던 것을 신도들이 2층을 더 올려 다시 7층으로 만든 이 탑은 높은 바위 위에 일직선으로 꼿꼿하게 선 자세가 일품이다.

정미면 수당리 원당굴 안국사지로 향한다. 은봉산(옛 안국산) 중턱에 자리잡은 안국사지는 조선시대 폐사지였으나 1929년 승려 임용준이 다시 세웠는데 또 폐사된 곳이다. 석탑(보물 제101호)과 미륵으로 추정되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제100호)이 서 있고,가장 높은 쪽에는 배바위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다.

석탑은 1층 몸돌의 3면에 여래좌상을 돋을새김했으며 2층부터는 몸돌 없이 지붕돌만 포개져 있는 형태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석조여래삼존입상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중원미륵리석불입상(보물 제96호)을 닮았다. 둥근 얼굴에 넓적한 코,두꺼운 입술 등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불상 형태다.

배바위에는 두 군데 매향 명문이 새겨져 있다. 1030년에서 1390년 사이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은 여미(해미) 북쪽 천구포 동쪽 가와 염솔(鹽率)에 향을 묻은 사실을 적고 있다. 매향이란 향중에서 가장 향기롭다는 침수향을 만들려고 향나무의 목심을 땅에 묻는 의식을 말한다. 그렇게 해서 56억7000만년 후에야 도솔천에서 내려올 미륵불께 올릴 공양물을 미리 준비하는 셈이니 얼마나 길고 원대한 기다림이며 소망인가.

안국사 터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석조여래삼존입상을 바라본다. 석불들은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굽어본다는 것은 연민이다. 아마도 석불입상들은 자신들을 보러 왔다 떠나는 중생들을 늘 그런 마음으로 배웅했을 것이다. 떠나는 중생이여.부디 미륵하생 때 다시 보자꾸나.

안국사지를 떠나는 마음이 가볍지 않다. 솔뫼에서는 어느 것에도 순교하지 못하고 적당히 피를 속이며 사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고,돌이라는 무거운 물성으로 이뤄진 안국사지에서는 어느 곳에도 내려놓을 수 없는 내 영혼의 무거움을 생각했다. 봄은 아무리 느리게 흘러가도 결국 여름에 닿는다. 가슴 속에서 잠시 그렇게 봄처럼 살고 싶다는 부질없는 희망이 일었다 스러진다.


◆ 구수한 우렁된장에 밥 한 그릇 '뚝딱'…함상공원에서는 아이들 안보 견학도

맛집 충남 당진군 합덕읍 운산리 280-1 합덕공용터미널 부근에 있는 광야식당(041-363-1990)은 충청도식 우렁된장집이다. 우렁된장찌개는 어린 날 논에서 우렁을 잡던 추억과 우렁각시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뚝배기에 담긴 우렁된장찌개는 구수하고,미질이 좋기로 소문난 합덕 쌀로 지은 밥은 차지고 맛있다. 우렁된장 7000원.

'강아지가 먹고 남긴/ 밥은// 참새가 와서/ 먹고,// 참새가 먹고 남긴/ 밥은// 쥐가 와서 먹고,// 쥐가 먹고 남긴/ 밥은// 개미가 와서 물고 간다/ 쏠쏠쏠 물고 간다. '(이상교 동시 '남긴 밥' 전문) 이렇게 사회적 순환성을 지닌 게 밥이다.

여행정보 신평면 운정리 197-3 삽교호국민관광지 앞바다에 있는 삽교호 함상공원(041-363-9229)은 상륙함,구축함,해양테마과학관,군함의 닻과 대형 스크루 등 야외 전시물을 갖춘 군함 테마공원이다. 바다와 해군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개장 시간(동절기 제외) 오전 9시~오후 6시30분.입장료는 어른 5000원,어린이 4000원,65세 이상 3000원.

면천에 있는 아미산(349m)은 당진군의 명산이다. 산의 정상에 있는 아미망루에 서면 저 멀리 서해와 합덕·우강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등산코스=아미산 입구 죽동리 당진외국어교육센터→1봉→2봉→정상→원점 회귀(휴식 포함 3시간30분)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