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발 사정(司正) 폭풍이 전국을 휘몰아치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로 폐지론에 직면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김홍일 검사장)가 1년 반을 철치부심하며 벼려온 칼날을 C&그룹에 댄 것이 공식적인 `출발신호'가 됐다.

서울과 지방의 각 지검은 이를 신호탄 삼아 경쟁이나 하듯이 정.재계를 겨냥한 수사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막 시작된 사정한파가 시계제로 상태로 빠져들면서 연말로 접어드는 우리 사회도 꽁꽁 얼어붙는 분위기다.

재계는 이같은 검찰의 행보가 경제를 해칠 것이라 우려하지만, 검찰은 잘못된 기업관행이 국민에게 끼치는 폐해는 더욱 막대하다며 당분간 칼을 거두지 않을 기세다.

◇ `성역은 없다'…현란한 검무(劍舞) = 대검 중수부는 지난 21일 서울 장교동 C&그룹 본사와 대구의 C&우방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는 동시에 임병석 회장을 자택에서 체포했다.

1주일이 지난 27일에는 전남의 C&중공업과 광양예선도 추가로 뒤졌다.

중수부가 1년4개월간의 동면에서 깨어난 당일 서울서부지검은 태광실업 비자금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이선애(82) 태광산업 상무의 자택과 은행 대여금고를 찾아나섰다.

앞서 지난달 서부지검은 한화그룹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압수수색 릴레이'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뒤이어 태광그룹 본사와 이호진 회장의 빌라, 서울지방국세청, 태광의 주거래은행, 한화 호텔&리조트 등을 차례로 ?었다.

이에 뒤질세라 서울중앙지검은 28일 현 정권의 실세 기업인이자 `살아있는 권력'으로 불리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사인 임천공업에서 40억원대 금품을 챙긴 혐의를 받는 천 회장은 두달 전 출국한 뒤 검찰의 소환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중앙지검이 천 회장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날 창원지검은 뇌물수수 혐의로 민주당 최철국 의원의 경남 김해 사무실을 동시에 뒤졌고, 서울북부지검은 청원경찰친목협의회가 현역 국회의원 30여명을 상대 로 한 `입법 로비'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재계 위주로 진행되던 검찰 수사의 불길이 마침내 정계로 옮아붙은 것이다.

검찰의 이처럼 현란한 검무(劍舞)는 어디에 원천을 두고 있을까.

과거에는 정권출범 초기에 대형 비리 사건들을 손보는 경향이 강했던 검찰이 현 정부 초반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행보를 보여왔다.

2008년 4월 총선이 있었는데다 곧바로 터진 촛불사태로 사정활동의 적절한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이후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 나섰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후폭풍에 휩쓸리면서 사상 최악의 시련을 맞게됐고 이후 다시 몸을 낮춘 상태에서 1년여를 지내야만 했다.

그러던 차에 `공정사회'라는 집권 중반기의 화두는 검찰권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력원이 됐는 분석이다.

검찰은 숨죽이고 살면서도 끊임없이 범죄정보를 모았고, 결국 살길은 수사밖에 없다는 조직논리가 함께 작동하면서 추상같은 사정활동에 대대적으로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 옷매무새 여미는 정재계 = 검찰발 사정한파가 본격화된데 대해 정ㆍ재계에서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거나 기업활동 위축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특히 재계에서는 서열 10위권 안의 대기업 서너곳이 중수부의 다음 수사 대상 리스트에 올랐다는 흉흉한 소문과 관련해 기업 전반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높아지는 동시에 기업수사가 조기에 일단락되기를 바란다는 시그널이 새어 나온다.

한 대기업 임원은 "하반기의 경기전망이 상당히 불투명한 상태에서 기업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수사 대상이 아닌 기업들까지 신경이 많이 쓰이고 경영이 위축되는 게 사실이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도 "다음 수사 대상이 어디라더라는 식의 소문이 돌면서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하고 조심스럽다"며 "내년도 경영계획을 짜야 할 시기인데 경영활동이 많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특히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대한민국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민주당 등 구 여권을 표적으로 한 `기획수사'라며 의구심을 표시하면서도 수사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노심초사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27일 국회 연설에서 "국민은 공정사회라는 허울로 포장된 의도된 사정에 대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정면 비판했다.

하지만 검찰은 '범죄는 성역을 가리지 않고 수사한다' 원칙에 따라 본연의 갈 길을 간다는 입장이어서 이번 사정폭풍의 진로가 어디서 꺾이게 될지는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우병우 대검 수사기획관은 "기업을 잘못 운영했을 때 국민과 사회에 끼치는 피해 범위가 광범위한데 총체적 책임을 묻는 기관이나 조사가 없었다"며 "(감사원, 금감원 등 다른 사정기관은) 자기 분야만 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검찰 외에는 전체적으로 보고 책임을 물을 적임 기관이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나확진 기자 ra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