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지병 수렁'에 빠지나] (7) 자녀가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면 부모 돌봐도 혜택…'재정누수'
건강보험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기초노령연금 등 거의 모든 사회복지 제도들은 도입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개인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을 사회가 보장해야 하는지,아니면 개인의 책임을 강조해야 하는지는 오래된 이념 논쟁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매우 착한 제도'다. 중풍 치매 등 중병을 앓고 있는 노인들을 간병하는 업무를 짊어진 가정의 부담을 사회가 덜어주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노인들 가운데 치매 중풍 등으로 장기 치료와 보호를 요하는 가정에 국가가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2007년 4월 국회에서 260명의 국회의원들 중 255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이었다.

◆시행 2년 만에 대상자 2배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 것은 법이 통과된 지 1년3개월이 지난 2008년 7월이었다. 치매나 중풍,관절염이나 요통 등 근골격계 질환으로 거동하기 불편한 노인들은 집에서 장기요양보호사와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국가는 노인들을 돌보는 장기요양보호사나 간호사에게 돈을 줘 가계의 부담을 덜어준다. 노인이 집에 머물기 어려우면 요양전문시설에 입소하게 되는데,이 경우 국가에서 입소 비용을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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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인구 중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등급' 인정자는 2008년 7월 14만명(노인 인구의 2.9%)에 불과했으나 작년에는 26만명(5.2%),올해 4월에는 30만명(5.6%)으로 늘었다. 내년에는 등급인정자가 37만명(6.6%),2015년에는 45만명(6.98%)에 이를 것으로 복지부는 추정하고 있다.

◆1인당 작년 1110만원 들어

작년 등급인정자 중 요양 서비스를 받은 18만명에게 쓰인 돈은 1인당 연간 1110만원이었다. 요양보호사 등이 장기요양보험 지원을 받고 있는 노인을 방문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면 시간 단위로 급여(1시간에 1만6120원)를 받는다. 야간에는 20% 가산하고,심야 · 휴일에는 30% 가산한 돈을 받는다. 요양시설에 들어가면 인정등급(1~3등급)과 시설의 종류에 따라 하루에 3만1340~4만8900원을 국가가 시설 운영업체에 준다.

이 돈은 어디에서 나올까. 장기요양보험 수혜자는 일부만 부담한다. 집에서 요양서비스를 받는 경우 15%,요양시설에 들어가는 경우 20%에 해당하는 비용만 내면 된다. 나머지 80~85%는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이 내고 있다.

정부에서는 올해 3323억원을 장기요양보험 예산으로 잡아놓았다.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떠맡는 부담금은 세대당 평균 4440원이다.

◆재정 누수 심각

장기요양보험의 첫 번째 문제는 한 번 혜택을 본 사람들은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본인이 부담하는 비용이 매우 적은 반면 혜택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복지부 재정 추계에 따르면 올해 이 제도에 2조7780억원,내년엔 3조2500억원이 들어가고 2015년에는 4조4790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2050년 이 제도로 인해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1.06%인 60조원가량이 쓰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 돈은 세금이나 건강보험으로 부담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재정 누수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과 돈을 내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아 공급자들이 실제로는 제공하지 않은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급여를 청구(불법 · 허위청구)하거나 실제 제공한 서비스보다 많은 수준의 돈을 청구(과다 · 부당청구)하는 일이 잦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8년과 2009년 불법 · 부당 청구 사실이 밝혀져 환수된 금액은 36억7000만원이었다. 발견하지 못한 불법 · 부당행위까지 포함하면 부풀려진 급여 청구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복지부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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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법 행위를 제어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게 문제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장기요양 서비스의 전 과정을 관리 · 감독하는 건강보험공단이 서비스 제공기관에 대한 평가까지 담당해 평가가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평가 결과를 재계약 여부와 연동시켜야 하는데 계약 당사자인 건강보험공단이 아니라 지자체장이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장기요양보험을 타먹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 자녀가 아픈 부모를 돌보는 경우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으나,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딸 경우 보험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목동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김모씨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도 아니고 시부모를 모시는 데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데도 요양보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혜택을 받고 있다. 그는 요양보호사 자격을 딴 뒤 3등급 판정을 받은 시어머니에게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인정받아 매달 45만원을 받고 있다. 김씨는 "시어머니와 따로 사는 경우에는 지금보다 두 배나 많은 9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은 제도 시행 2년 만에 소지자가 21만여명에 달할 정도로 취득이 쉽다.

◆엄격한 관리 필요

전문가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재정 부담을 고려해 대상자를 저소득층 또는 중증환자 등 꼭 필요한 사람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경제학)는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 중이고 조세부담률이 낮은 점을 고려해 노인장기요양보험 적용 대상자를 보수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전체 노인의 15%,독일은 10%가 넘는 노인들이 제도의 혜택을 보고 있다는 점에 비춰 우리도 이 수준으로 빨리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우리는 재정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도입으로 인해 세대 내,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완교 KDI 부연구위원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들이 지역가입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부담을 지고 세대별로는 저출산 영향으로 인구가 적은 후세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한 제도가 아니어서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이 써야 할 돈을 쓰지 않게 해 상속재산을 늘리고 소득계층 간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는 부작용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