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빵 먹어봤어? 뻔해서 더 재미있는'제빵왕 김탁구'
제빵업체 회장 구일중(전광렬)은 간호사 미순(전미선)과의 불륜으로 탁구(윤시윤)를 낳는다. 구일중의 부인 인숙(전인화)도 비서실장(정성모)을 유혹해 아들 마준(주원)을 갖는다. 미순은 혼자 키우던 어린 탁구를 아버지 구 회장 집으로 데려다준 뒤 실종된다.

탁구는 엄마를 찾기 위해 구 회장 집을 나와 떠돌이로 전전한다. 성인이 된 탁구와 마준은 라이벌로 재회한다. 유경(유진)을 둘러싼 연적이자 제빵왕 타이틀을 놓고 겨루는 경쟁자다. 그런데 실종됐던 미순이 다시 등장해 궁금증을 끌어올린다.

KBS 2TV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연출 이정섭,극본 강은경)의 시청률이 고공행진 중이다. 16일 TNmS미디어에 따르면 15일 방영분은 36.9%(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 최고다. 중장년층을 붙든 게 주효했다. AGB닐슨이 14,15일 성별 · 연령별 시청률을 조사한 결과 50대 여성이 26.2%로 가장 많았고 60대 이상 여성 25%,40대 여성 22.8% 순이었다.

젊은층에서는 팬덤 현상도 등장했다. 드라마 속 캐릭터를 활용한 각종 그림 패러디와 뮤직비디오,플래시 애니메이션 등을 만들어 인터넷에 띄우고 있다. 구일중 회장의 자택으로 등장하는 청남대의 방문객 수도 급증하고 있다.

'제빵왕 김탁구'는 우선 불륜과 폭행,혼외자녀 등 통속적인 요소들로 시선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이 아니다. 주인공의 성공 가도에 놓인 시련과 장애를 빠른 속도로 담아낸 것이다.

구 회장 역의 전광렬은 "인기 비결은 드라마 자체에 있다"며 "화려한 배우들이 나온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대 김남길 한가인이 주연한 SBS '나쁜 남자'(시청률 8.1%),소지섭 김하늘이 주연한 MBC '로드 넘버원'(7.5%)을 멀찌감치 따돌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응진 KBS 드라마 국장은 "내러티브가 강렬하다. 통속 드라마의 사랑과 원한,가족관계에 얽힌 내막,모든 질곡을 뚫고 정상을 향하는 개척 정신 등이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드라마를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비유한다. 화제의 첩보물 '아이리스'가 양식,우리 정서를 우려냈던 사극 '추노'가 한식,고전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신데렐라 언니'가 퓨전음식이라면 '제빵왕 김탁구'는 엄마 밥상이라는 얘기다.

인기의 핵심은 1970년대 경제부흥기를 배경으로 서자 김탁구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제빵왕에 오르는 성공 스토리다. 신분 상승이 어려워진 요즘 이 작품은 자수성가에 대해 강렬한 동경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순수와 야망을 상징하는 두 인물의 경쟁 구도와 제빵 기술에 대한 세밀한 묘사로 접근한 게 주효했다.

12년간 엄마를 찾아 헤매는 탁구는 순수하고 착한 인물의 상징이다.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빵 가게를 전전하며 기술을 익히는 토종 장인이다. 반면 마준은 부유한 환경에서 세계 각국을 돌며 제빵 교육을 받은 유학파다. 그러나 그는 이기기 위해 저열한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 교활한 인물이다. 두 사람의 대결에서 순수한 토종 장인이 교활한 유학파를 이겨낼 것이란 기대감을 시청자들은 갖게 된다.

제빵 기술에 대한 섬세한 관찰도 흥미롭다. "2년 내내 반죽만 해댔더니 손만 대면 반죽이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됐지요. " 김탁구가 제빵 명인 팔봉 선생(장항선) 앞에서 밀가루를 반죽하며 하는 말이다.

그는 반죽을 빚을 때 건조함을 예방하기 위해 스프레이를 뿌린다. 냄새만 맡고 반죽 상태를 알아내는 후각 천재의 일면도 그려진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크림빵,곰보빵,앙금빵 등이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빵 부시레기는 곰보빵 부시레기가 왕중왕인데…"란 대사는 중년층 시청자의 가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이 드라마는 가난하지만 꿈을 향해 매진했던 한 세대 전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요즘 시청자들은 이런 희망적인 이야기를 절망적인 과거보다 선호한다. 이것이 어린 시절 끔찍한 경험으로 파괴된 삶을 살아가는 '나쁜 남자'나 6 · 25전쟁의 상처를 담은 '로드 넘버원'보다 '제빵왕 김탁구'에 채널을 맞추는 이유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