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작곡가 박춘석씨가 14일 오전 6시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0세.

박씨는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문주란 등 수 많은 인기가수를 배출하고 주옥같은 곡들을 남겨 대한민국 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빈소는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전 8시이며, 장지는 경기도 성남 모란공원묘원으로 정해졌다.

◇작곡가 박춘석씨는 누구인가
박씨는 1930년 5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조선고무공업주식회사를 운영하던 부친 슬하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네 살 때부터 풍금을 연주하며 '신동' 소리를 들었고, 봉래소학교와 경기중학교를 거치며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독파했다.

박씨는 경기중 4학년 때 길옥윤, 베니 김 등의 제의로 명동 '황금클럽' 무대에서 서면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1949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 입학해 피아노를 1년간 전공하다 중퇴했다. 이후 신흥대학(現 경희대) 영문과로 편입했다.

박씨는 1954년 '황혼의 엘레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곡을 시작했다. '아리랑 목동'(박단마)', '비 나리는 호남선(손인호)', '삼팔선의 봄(최갑석)', '사랑의 맹세(패티김)', '바닷가에서(안다성)' 등을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다.

◇음악과 결혼한 '스타제조기'
박씨는 요샛말로 표현하면 '스타제조기'라 불릴 만큼 수많은 인기가수와 히트송을 남겼다. 특히 가수 이미자와의 만남은 그의 음악을 트롯풍으로 바뀌게끔 한 결정적인 사건이다.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흑산도 아가씨', '황혼의 블루스', '그리움은 가슴마다', '삼백리 한려수도' 등 무려 500여 곡을 이미자와 함께했다. 이 노래들은 모두 히트송 반열에 오르며 '박춘석-이미자'라는 환상의 콤비를 만들어 냈다.

1960~1970년대 그의 곡은 이미자뿐 아니라 가수 패티김, 남진, 나훈아, 문주란, 정훈희, 박춘석까지 섭렵했다. 그가 작곡한 '가슴 아프게', '공항의 이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비 내리는 호남선', '초우', '물레방아 도는데', '사랑이 메아리칠 때', '바닷가에서', '가시나무새', '마포종점' 등은 현재도 한국인의 가슴을 울리는 명곡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작곡가, 지구레코드사 전속작곡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 거성레코드사 사장 등을 거치기도 했다. 1950~1980년대 그가 작곡한 노래만 해도 2700여 곡이나 된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개인 최다인 1152곡이 등록돼 있다.

2001년에는 영국 그로브음악대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994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16년간 투병하다가 결국 생을 마감했다.

◇트로트계 가수들 "큰 별 졌다"
현재 박춘석 작곡가의 타계 소식을 접한 가요계는 현재 트로트 가수들을 중심으로 고인의 대한 애도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박춘석 사단'의 일원이었던 가수 남진은 이날 빈소를 찾아 박씨의 가족들을 위로했다.

가수 태진아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별 중의 최고별이 졌다"며 "오늘날의 이미자 선배를 있게 만든 분이고, 그야말로 대선배들도 박춘석 선생님의 곡은 안 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큰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건 가요계 큰 슬픔"이라며 "하늘나라에 가도 우리 후배들, 가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실 분이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가수 송대관도 "평소에 무척 존경했던 분인데, 그런 분께서 별세하셔서 무척 안타깝고 우리 트로트계에도 너무나 큰 손실"이라며 "빨리 쾌차하셔서 트로트계를 위해 더 큰 일을 해주시길 바랐는데, 이렇게 별세 소식을 들으니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한경닷컴 김은영 기자 mellis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