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취업을 못한 채 또 새해를 맞네요. 솔직히 말해 두렵죠.그러나 새해에는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꿈을 꾸며 다시 각오를 다집니다. " 살을 에는 찬바람이 몰아치던 31일 밤 명문 K대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김모씨(29)는 "지난 1년간 '정말 힘들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고 말했다.

올해 30세가 되는 김씨는 취업 삼수생이다. 지난 2년간 100군데가 넘는 회사에 입사 원서를 냈지만 모두 탈락했다. 김씨는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책했다. 그는 "졸업을 앞둔 2008년 하반기부터 구직 활동을 했다"며 "처음 입사시험에서 떨어질 때만 하더라도 부족한 점을 찾아 보완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늦은 시간까지 학교 도서관에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집에 가도 마음이 불편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는 한때 공시족(公試族 ·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이었다. 재수 끝에 2001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1학년을 마치고 군(軍)에 입대했다. 2년간 병역을 마쳤지만 복학을 미룬 채 2004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지금 생각하면 공무원 시험 준비에만 매달렸던 그때 2년이 가장 후회된다"는 그는 "별다른 꿈도 없이 그저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무작정 시작한 게 잘못이었다"고 자신을 질책했다. 수험 기간이 길어지자 그는 고시원 총무 생활과 공부를 병행했다.

고시원 등록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6개월간 총무 생활을 하며 제대로 먹지도,자지도 못한 채 공부를 하다보니 몸이 망가진데다 번번히 낙방하자 덜컥 겁이 났다"며 "2006년에 복학해 일반기업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만 해도 취업이 이렇게 힘들 줄은 예상도 못했다"고 했다.

복학 후에도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는 그는 "대학만 오면 모든 게 다 잘될 줄 알았는데,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철이 없었던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학자금 대출만 1500여만원을 받았다는 김씨는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빚만 안게 됐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도 남들 만큼 취업준비에 땀을 쏟았다. "재학 시절 영어 성적도 꾸준히 높이고 학점도 신경쓰며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는 그는 "그러나 유례 없는 취업난이 불어닥친 2008년 하반기 졸업을 앞두고 50여군데 회사에 원서를 냈지만 서류에서 탈락한 곳만 40여군데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2년 이상 백수 생활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졸업 후 2년간 그는 거의 매일 도서관에 가장 먼저 나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나마 도서관에 있을 때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가 마지막으로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 뵌 것은 2008년 설날이었다. 김씨는 "나이 서른에 아직도 취업을 못한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취업을 하면 당당한 모습으로 어머니를 찾아뵙겠다고 했는데 그게 2년이나 지나버렸다. 새해에는 취업도 하고 며느리 후보감도 찾아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며 멋쩍게 웃었다.

김씨는 힘든 취업 삼수의 길을 걷고 있지만 희망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나보다 더 힘들게 구직 활동을 하다가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친구들을 적잖게 봤다"며 "언젠가는 원하는 직장에 입사할 날이 올 것"이라며 주먹을 쥐었다. 현재 두 군데 회사에서 마지막 채용 심사를 남겨놓고 있다는 그는 "설 전에 반드시 취업에 성공해 첫 월급으로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는 게 새해 소망"이라고 말했다.

이 꿈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설 전이 아니라면 봄에,그마저 안되면 가을에 다시 원하는 직장을 향해 돌진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어머니도 '꿈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라'며 믿고 기다려주시겠다고 했다"며 "새해에는 정말 제대로 한번 해볼 각오"라고 말했다.

그는 "새해는 기운이 넘친다는 호랑이 해인 만큼 전국의 청년 백수들이 모두 호랑이의 기개를 받아 취업에 성공했으면 좋겠다"며 도서관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