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추구하는 존재거든.때로는 자기가 무얼 찾는지,왜 추구하는지도 모른 채 찾고 추구하지.몽유병 환자처럼 말이야.찾다가 못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추구가 의미 없는 건 아니지."

소설가 이승우씨(50 · 사진)의 경장편소설 《한낮의 시선》(이룸 펴냄)은 '찾도록 운명지어진 자'의 이야기다. 홀어머니의 살뜰한 보살핌 아래 자란 소설의 주인공 대학원생 한명재는 스물아홉 해 동안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에게 어느 순간 도저히 통제 불가능한 각혈과 같은 충동이 찾아온다. '마음 한쪽에 찌그러진 채 방치되어 있던 그 증상'은 바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에 대한 갈망.결국 그는 아버지를 찾아 아무 연고도 없는 작은 도시로 흘러든다.

그동안 생의 근원을 건드리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여 온 이씨 특유의 분위기는 이번 신작에서도 여전하다. 갑자기 아버지를 찾고 싶어하는 아들에 대해 이씨는 "이르지 못한다고 해도 추구하고 마는 인간을 은유한다"고 말했다. 간절하게 무언가를 의식하고 원하는 순간 평온했던 일상은 더 이상 아늑하지 않다. 그리고 그 욕망은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다. 이씨는 이를 배 속에 기생하는 촌충의 식욕을 채워주기 위해 음식물을 탐하는 처지가 된 인간에 비유했다. '촌충은 몸의 일부다. 촌충이 원하는 것은 그가 원하는 것이다. 그는 살아야 하고,살기 위해 촌충의 의지에 따라야 한다. '

아들은 드디어 아버지를 대면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실체는 보잘것 없다. 아버지는 애타게 소리지르는 아들을 외면한다. 숨겨둔 아들의 존재가 발각됐다가는 선거에서 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버지는 선거 기간에 아들이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감금해 버리기까지 한다. 따뜻한 한 마디조차 건네는 법이 없다. 한명재의 아버지는 '모든 수단이 욕망을 위해 동원되는 세계,싸우고 경쟁하고 부정하고 쳐내고 잘라 내는 세계'에 살고 있다. 깊은 어둠 속에서 길잡이처럼 보이는 것이 빛인 듯 하지만,가까이 가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간절히 추구할 가치라고는 애초에 없었다.

이씨는 "주인공의 아버지란 국가이거나 제도이거나 이념이거나 이 세상에 있는 본래의 실체(참된 아버지)가 아닌,넘어서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며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깨닫게 되는 참된 초월자와 아버지를 비교해 읽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명재의 추구가 무의미한 건 아니다. 그는 '찾도록 운명지어진 자'의 역할에 충실했고,그 결과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고,무엇에도 쫓기는 일 없이 그저 존재할 수 있을' 듯한 상태로 한 단계 올라선다. 이씨는 "주인공이 관찰과 고뇌,성찰을 거쳐 각성에 이르는 젊은이기를 원했다"면서 "이제 그는 지상의 (헛된) 아버지들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