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평 전세 나온 것 있습니까?"(손님)

"이를 어쩌나…. 좀 전에 한 분이 계약하셨는데.요즘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공인중개사)

엘스 리센츠 파크리오 등 대단지 아파트가 몰려 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세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총 2만채가 넘는 아파트 가운데 전세로 나온 물건이 단지별로 손에 꼽을 정도다. 잠실동에서 영업하는 노승준 공인중개사는 "고교선택제 축소 때문인지 하남과 일산에서도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전했다. 올 한해 매매시장 침체,보금자리주택 청약 대기,뉴타운 · 재개발 이주수요 등이 전세 수요를 부추겼지만 서울 강남권과 양천구,노원구 등 이른바 '교육 8학군'에선 고교선택제 축소 방침이 '전세물 기근' 사태를 불렀다.

◆교육8학군 전셋값 급등

서울 강남 3개구에선 아파트 전세금이 정말 '금값'이 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쌍용1차 104㎡(이하 공급면적 기준)의 경우,지난 8월 3억5000만원에서 5000만원 뛰어 지금은 4억원에 전세가 나와 있다. 올초 1억8000만원 하던 일원동 우성아파트 106㎡ 전셋값도 3억3000만원으로 거의 두 배 뛰었다. 바로 옆 한신아파트는 전세 물건이 단 한 건도 없는 상태다. 송파구 잠실 일대 전셋값은 올 들어 2억원 넘게 오른 곳이 부지기수다. 올초 3억원에 거래됐던 신천동 파크리오 149㎡ 전세는 지금은 5억4000만원은 줘야 구할 수 있다.

서초구에선 반포동 반포자이 116㎡가 2억1500만원 오른 5억~6억원,서초동 롯데캐슬클래식 165㎡는 2억원 상승한 6억~7억원에 전셋값이 형성되고 있다. 잠원동에서 영업하는 이덕원 공인중개사는 "잠원동에선 아파트 매매건수가 한 달에 200건 정도 되는데 지난달엔 25건밖에 거래가 안됐다"며 "매매시장 침체가 계속되자 사람들이 다들 전세로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물량이 워낙 없다보니 전세가 나오자마자 바로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배정 학교가 좋아 요즘 주목받는 양천구 목동7단지 인근에서도 아파트 전세금이 1년 새 20%가량 상승했다. 김현승 VIP공인 대표는 "목운초등학교 근처 동양파라곤 32평 전셋값이 올초 2억8000만원에서 3억3000만원으로 뛰었다"고 전했다. 노원구 중계동에서도 전세 매물을 찾기 쉽지 않다. 은행사거리에서 영업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전셋값이 계속 오른다고 하니 다른 데로 이사가지 않고 재계약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그러다보니 전세 매물 자체가 나와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중계동 아이파크 109㎡형의 경우 올 상반기 2억원하던 전셋값이 지금은 2억3000만~2억4000만원까지 올랐다.

전셋값 급등으로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도 높아졌다. 송파구의 전세가 비율은 작년보다 4.6%포인트 올라 32.5%까지 상승했다. 강남구의 전세가 비율은 30.1%로 2006년 2월(30.4%) 이후 3년10개월 만에 30%대를 넘겼다.

◆고교선택제 축소 영향

공인중개사 등 현장 정보에 민감한 부동산 전문가들은 고교선택제 원안 수정이 강남권과 양천구,노원구 등지 전셋값을 더욱 끌어올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교선택제는 중학교 3학년생들이 1~2단계에 걸쳐 지원학교를 고를 수 있는 제도.1단계에서 서울 전 지역의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선택,추첨으로 20%의 학생을 배정한다. 다음 2단계에선 거주지 학군내 학교를 선택해 역시 추첨으로 40%의 학생을 배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이 '거주지 학군내'이긴 하지만 '추첨'이 아닌 '통학편의를 고려한 조건부 추첨'이란 식으로 수정키로 했다. 이렇게 바뀌면 강남권이나 양천구 목동 등 좋은 학군으로 이사를 들어가야 하고 이들 지역 전세 수요는 더욱 몰릴 수밖에 없다.

강서구 가양동에 사는 초등학교 3년생을 둔 육근아씨는 "고교선택제가 유명무실화되기 때문에 강남이나 목동으로 전세라도 들어가야 하나 고민 중"이라며 "이랬다 저랬다 원칙 없이 방황하는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에 분통이 터진다"고 격앙했다.

고교선택제 축소로 '명문 학군'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도봉구 동대문구 등 강북지역과 일산 평촌 광명 남양주 등 수도권 신도시 전셋값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들 지역의 전셋값 상승세는 지난달 마이너스로 반전됐다.

◆강남 입주물량 적어

강남권은 내년에도 입주물량이 극히 적어 전셋값 강세는 지속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2005~2008년 서울 전체 지역의 연평균 입주 아파트는 4만7919채였다. 올해는 2만9446채 입주했고 내년엔 3만5418채가 입주할 예정이다. 작년의 5만4278채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물량이다. 그나마 올해는 지난해 입주했던 잠실 재건축 아파트 물량 여파로 숨통이 트였는데 내년엔 입주 가뭄이 더 심해질 전망이다. 강남 3개구에선 올해 약 3600채가 입주했고 내년엔 4500채가량이 완공된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연구실장은 "미리 전셋집을 구하려는 선수요도 눈에 띈다"고 전했다.

장규호/노경목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