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며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은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고 품성이 넉넉해지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노년기에 접어들면 거꾸로 잘 노여워하고 완고한 성격으로 변하기 일쑤다. 조만간 고령화의 늪에 빠지게 되는 대한민국.건강하게 100세를 살려면 체력향상과 고른 영양섭취도 중요하지만 늘어난 수명을 누리는 동안 밝게 살아갈 마음가짐을 갖추는 게 더 시급할지 모른다.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서도 노인의 심리적 변화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스스로 노인이 됐다고 느끼는 계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시각 청각 미각 등 감각기능과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흰머리와 주름살이 늘어나는 등의 신체적 변화다. 둘째는 주위 동료의 사망,자신의 정년퇴직,가장으로서 누렸던 힘의 상실,손자 손녀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등을 통해 느끼는 사회적 변화다. 셋째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던 일상적인 일을 수행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느끼는 좌절감이다.

이 같은 신체적 · 사회적 변화와 좌절감에 의해 노인의 성격은 젊었을 때와는 다르게 변해간다. 우선 노인은 우울하다. 이혼 · 사별은 물론 낮은 경제 · 사회적 지위,가족 및 사회로부터의 소외,뇌졸중이나 기능상실을 초래하는 내과질환 등이 우울증의 주요 요인이다. 이 중 어떤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노인의 우울증은 자살로 이어질 수 있어 사뭇 심각하다. 노인에게 있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결정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젊은이와는 달리 남은 얼마간의 시간을 버린다는 차원인 만큼 상대적으로 결행 가능성이 커진다.

200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0대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48명,70대 이상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89명으로 전체 평균인 26.1명보다 월등하게 높다. 매년 1만3000명가량이 자살한다. 이 중 65세 이상의 자살은 약 30%를 차지한다.

젊은이의 자살이 주로 취업,빈곤,가족 간의 불화 등에서 빚어지는 데 반해 노인의 자살은 우울증과 고독,신체적인 질병이 주된 원인이다. 노인 자살자들은 대부분 정신장애(특히 우울증)를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의학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게 통설이다. 따라서 배우자 사망 등 자살의 위험신호로 생각될 일이 생기면 우울증과 자살의도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둘째 노인은 사회활동이 감소하면서 내향성과 수동성이 커진다. 남자 노인은 위축되고 수동적인 성격으로,여자 노인은 공격적 권위적인 성격으로 변해 남녀가 서로 비슷해진다. 셋째 융통성이 떨어지면서 익숙한 옛것만을 고집한다.

나이들면 팔다리의 유연성이 떨어지듯 뇌의 전두엽 기능도 저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사고가 경직되니 매사를 옛날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열린 마음도 점점 닫혀간다.

넷째 조심성이 많아져 실수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다섯째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는 심리가 커진다. 여섯째 먹는 즐거움에만 매달리게 되고 점차 인색해지면서 세상에 다녀간 흔적을 남기려 애쓴다. 일곱째 노화,성적인 호감 · 직업 · 경제능력의 상실 등으로 대외적으로는 위축되면서 자신에 대한 애착은 강해진다. 따라서 어린아이처럼 자기중심적이고 병적인 자존심이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자존심이 극도로 저하되는 경우에는 자기애적 성향(나르시즘)으로 퇴행하게 된다.

이 같은 노년기의 심리변화를 슬기롭게 다스려야 심신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화가 질병이 아닌 정상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노화에 의한 신체적,정신적 기능의 감퇴는 그 양상이나 속도가 미리 정해진 게 아니므로 당황하지 말고 순응해야 한다.

낮에 지역사회 내 노인들이 모여 사교행사나 자원봉사 취미활동을 하면서 불안 우울 외로움 지루함을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 친목단체에 가입하거나 노인종합복지관 경로당 종교단체를 활용하는 게 좋다. 영국의 사회사업가 힐러리 코탐은 "행복한 노년을 보내려면 일상사를 함께할 6명 이상의 친구를 가져라"고 조언한 바 있다.

현재의 사회적 위치에 너무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절도있게 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 과거의 실수나 못다한 일을 애통해하기보다는 세상에 태어나 이런 일을 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도록 하자.다양성을 인정하고 신세대의 사고를 따라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화를 억누르면 병이 되므로 그때 그때 적당히 풀도록 한다. 주위사람의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민수 교수 <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