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과를 한 개 가지고 있고 너는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있다. 그런데 나는 사과보다는 커피를 마시고 싶고 너는 커피보다는 사과를 먹고 싶다. 그렇다면 현재의 물자 배정은 잘 된 것이 아니다. 꼭 같은 사과 한 개와 커피 한 잔이라도 나에게 커피를 주고 너에게 사과를 준다면 너와 나는 모두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

현재의 경제활동을 달리 바꿀 때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일제히 지금보다 더 나아진다면 그렇게 개선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러한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경제활동을 효율 상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커피를 좋아하는 내게 사과를 주고 사과를 좋아하는 네게 커피를 주는 물자 배정,즉 자원 배분(resource allocation)은 비효율적인 것이다.

어떤 상태가 효율적이라면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일제히 개선할 여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도록 자원 배분의 구조를 끝까지 개선한 상태라야 한다. 경제학자 파레토(Pareto)는 이렇게 끝까지 개선된 상태를 효율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의 이름을 따서 효율 상태를 파레토 효율 상태,또는 파레토 최적 상태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의 경제생활이 효율 상태라면 더 이상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일제히 개선시킬 수 없다. 어떤 사람의 생활을 개선시키려면 반드시 다른 어떤 사람의 생활을 악화시켜야 하는 상태가 효율 상태인 것이다. 예컨대 내가 사과와 커피를 모두 차지하는 배분도 효율 상태다. 너를 좋게 하기 위해 사과나 커피를 조금 주려면 내 몫이 그만큼 줄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네가 모두 다 가지는 배분도 역시 효율 상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여러 개의 효율 상태가 가능하다.

자원은 희소하기 때문에 이것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중요하다. 경제학이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효율성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희소한 자원을 한 사람이 모두 독점해 버리면 다른 사람들의 사용은 제한당하지만 이 상태는 효율 상태이다. 독점 소유자의 몫을 줄여야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희소한 자원을 모두 독점하는 상태를 효율 상태라는 이유로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효율성(efficiency)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공평성(equity)이 필요하다.

그런데 효율성과는 달리 공평성을 명확하게 합의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비효율적인 상태에서 더 효율적인 상태로 개선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어느 효율 상태가 불공평하기 때문에 다른 공평한 효율 상태로 옮겨가자는 제안에는 반드시 반대자가 나타난다. 이 제안을 실행하면 어떤 사람들의 생활은 개선되겠지만 다른 일부 사람들의 생활은 반드시 악화하기 때문이다. 생활이 악화하는 사람들이 그 공평성의 기준을 수용하도록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효율성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합의하지만 공평성에 대해서는 서로,때로는 극렬하게,대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