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서울 목동의 A학원. 평범한 옷차림의 아주머니 한 명이 학원 접수창구 앞에서 아들의 수강등록을 대신하러 왔다며 접수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학원 수업은 몇 시까지 하느냐" "수강료는 얼마냐" 등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꼬치꼬치 따지더니 학원 시간표 및 수강료 영수증 등을 챙기고 잠시 후 자리를 떠났다.

학원장 B씨가 벌금 400만원 고지서를 받아든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B씨는 그제서야 자신이 전문 '학파라치'에게 당했음을 알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영세학원들만 타깃이 돼 억울하다"며 "정말 고액이 드는 불법과외 등에 대해서는 정작 실태파악조차 못하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지난 7월 학원 신고포상제가 도입된 이후 불법사례 적발이 3배 이상 늘어나는 등 단속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대부분 눈에 보이는 영세학원들에만 초점이 맞춰져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4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 7월7일부터 학파라치제 시행 이후 학원의 교습시간 위반,수강료 초과징수 등 지금까지 적발된 학원의 불법운영은 총 5066건,포상금 지급액은 11억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정작 사교육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과외 적발은 293건에 그쳤다.

교과부는 이에 따라 서울 강남,목동 등 불법 고액 개인과외 가능성이 큰 지역을 중심으로 합동대책반을 구성해 특별 점검한다는 방침이지만 실제로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 지역교육청 사교육 단속팀 관계자는 "과외의 경우 개인 집에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라 단속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민원이 제기되는 것들을 확인하는 수준의 단속활동밖에 할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변에는 버젓이 월 100만원 이상의 고액과외가 판치고 있지만 단속을 걱정하거나 단속에 걸렸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법안 자체에도 허점이 많다. '학원의 설립 · 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제14조 2에 따르면 개인과외 교습자는 교습장소와 금액 등에 대해 관할 교육청에 신고하도록 돼 있지만 대학 또는 이에 준하는 학교에 재적 중인 학생은 예외대상으로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실제 미신고 고액과외를 하고 있더라도 방송통신대 등 유사 대학에 등록만 돼 있으면 처벌을 면하게 된다.

서울 강남 대치동의 한 보습학원장은 "요즘 경제상황이 어려운 데다 정부 단속까지 강화되면서 문닫는 학원이 많게는 하루에 수십 개"라며 "사교육비가 치솟는 본질은 외면하고 영세학원만 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노량진의 한 입시학원 관계자도 "보습학원은 정작 돈 없는 서민 자녀들이 다니는 곳인데 이곳이 주 타깃이 돼가는 분위기"라며 "정부가 서민을 위해 사교육비 절감대책을 내놓는다는 게 오히려 서민들에게만 피해가 돌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재철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