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성폭행' 아내 탄원에도 실형 선고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아동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지나치게 높일 경우 형벌체계 전반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고등법원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우려했다.

최근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범죄 형량을 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양형 상향의 부작용을 법원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은 처음이다.

18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형사6부(박형남 부장판사)는 의붓딸(10)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고모(32)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판결문을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특정시점의 법감정에 치우쳐 특정범죄에 대한 형벌의 수준을 지나치게 높일 경우 오랜 경험과 논의를 통해 형성된 형벌체계를 뒤흔들고 다른 범죄에 대한 양형에도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는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기, 질투, 시기, 독선, 투쟁욕, 권력욕, 복수심, 타인의 불행에 대한 희열 등이 법감정의 옷을 입는 수가 있고, 그러한 법감정은 사회의 이목을 끄는 특정사건의 발생을 전후해 상당한 편차를 보일 수 있다"며 최근 '조두순 사건'으로 아동 성범죄에 대해 엄격해진 법감정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현행법(성폭력범죄의 처벌법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13세 미만 대상의 성범죄 형량의 하한이 '징역 7년'으로 정해져 있어 심신미약 감경을 하지 않으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는 데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재판부는 "형사정책과 국민의 법감정상 아동 성범죄에 대해 높은 처벌이 요구된다는 점을 고려해도 집행유예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입법의 타당성에 대해선 의문을 갖고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검토했음을 시사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어머니이자 고씨의 아내인 김모(39)씨의 간곡한 탄원을 참작해 고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고자 했으나, 현행법의 테두리에 갇혀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 조사과정에서 고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던 김씨는 1심 재판 과정에서 고씨를 하루빨리 석방해 달라며 수 차례 선처를 호소했고, 항소심 재판부에도 같은 취지로 탄원했다.

김씨는 "어미된 자로서 딸 아이의 고통과 상처를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죄에 대한 대가로 네 사람이 당할 고통은 그 죄보다도 더 큽니다.

4년 징역형이 확정된다면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저희들은 원망과 불평, 사회를 향한 두려움에 떨고 아이들은 문제아로 전락하는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