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11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작심한 듯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허용 문제에 대해 말을 쏟아냈다. 선진국이 시행하는 두 가지 핵심 사안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당장 우리의 노사문화가 한꺼번에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숨기지 않았다. 13년간 끈 선진제도를 도입하면 국제적 기준에 다가가는 효과가 있겠지만 노사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한 숙제들이 산적한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수라는 말도 했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는 법 개정 절차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야당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개정이 만만치 않다.

▲임 장관=노동조합법 부칙에는 노동부 장관이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교섭절차 등을 강구하도록 돼 있다. 법률안을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행정법규를 통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노사에 교섭창구 단일화를 요구하고 단일화가 안 되면 기업 측이 교섭에 응하지 않더라도 부당 노동행위로 처벌받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조합원 비율이 50%를 넘는 노조가 무조건 교섭대표가 된다. 그런 노조가 없는 경우 30% 이상을 차지하는 노조들이 모여 교섭대표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사측과 직접 교섭하고 다른 작은 노조들은 직접 교섭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섭대표가 사전에 작은 노조들과 협의한 후 어느 정도 그들의 요구를 임단협 교섭안에 넣는 게 일반적이어서 노조 간 충돌은 많지 않다. 이것이 선진 노조다. 우리는 아직 방침은 안 정했지만 복수노조들이 자율적으로 단일교섭 창구를 만들도록 할 계획이다. 이것이 안 되면 조합원들이 투표를 해 교섭대표를 뽑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성명훈 서울대 의대 교수=경영계에서는 복수노조에 따른 우려감이 적지 않다. 복수노조 허용 이후에 대해 전망해 달라.

▲임 장관=경영계 입장에서는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노조들의 선명성 경쟁으로 강성화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는 크지 않다. 오히려 강성노조가 장악한 사업장에서는 합리적 온건파 노조들이 발언권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원덕 삼성경제연구소 고문=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신생 노조가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노사관계에 급격한 파장을 미치는 만큼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임 장관=복수노조의 연착륙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명 이상이면 노조를 설립할 수 있고 교섭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교섭 자격을 갖추려면 전체 조합원 중 30% 이상의 가입이 필요하다. 한국도 복수노조 시행 이후 교섭대표 후보 자격을 갖추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조합원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복수노조 등의 문제와 별개로 노동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이와 관련해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임 장관=시간을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 해고 유연성이 아니라 근로시간,임금체계 등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에 집중할 생각이다. 비정규직 문제 역시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고 법 적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둘 방침이다. 공공부문에선 공무원 복무규정과 보수규정에 대한 개정에 나서 공공기관 노조도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그동안 노조 조합비는 공무원들의 급여에서 원천공제됐다. 하지만 새로운 보수규정은 공무원들의 자발적 송금 의사를 확인토록 하고 있다. 복수노조가 공공기관 노조에도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정택 인하대 교수=최근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무원들의 정치투쟁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임 장관=최근 들어 민간 기업 노조들이 과거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변화를 꾀하는 데 반해 공무원, 공공기관 노사관계는 여전히 불합리한 점이 많다. 일각에서는 공공부문이 강경 노사관계를 선도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른 문제점 개선을 위해 노동부 내에 공공부문 노사문제만 담당하는 관련 국을 따로 신설했다. 구체적으로는 최근 국장급인 공공노사정책관을 두고 그 밑에 공무원 노사관계과,공공기관 노사관계과를 신설했다. 공무원 노사관계과는 공무원 노조와 교원노조의 노사문제를 감독하고 지도한다. 공공부문에서 단체협약 내용을 분석해 문제가 있는 것은 수정토록 하고 있다. 최근 전공노(전국공무원노조),민공노(민주공무원노조) 전임자 중에 해직자들이 활동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전공노가 이를 시정하지 않자 노조 설립을 취소하기도 했다. 공공기관 노사관계과는 공공기관들이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에 대해 불합리성 여부를 판단하고 공공기관이 요청해오면 관련 컨설팅을 수행한다.

▲최용선 서울시립대 교수=국책연구원이나 연기금 등 공공기관은 전임자 수가 민간 기업의 2배가 넘는 등 노사문제가 심각하다. 경영자 측에서도 주인의식 없이 이면계약을 통해 문제 덮기에만 급급한 경우가 많다.
▲임 장관=공공기관 노사 관행은 개선 필요성이 큰 분야로 인식하고 있다. 단체협약 내용의 30% 이상이 불법일 정도다. 앞으로 노사가 서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용구 대림산업 회장=대림산업은 2003년부터 전임자에게 주던 임금을 조합원들의 급여에 포함시킨 뒤,조합원들이 전임자 급여를 주도록 하고 있다. 이후 노조도 조합원들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민주노총에서 탈퇴했다.

▲이재웅 성균관대 교수=고용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8%로 총 실업률의 3배에 달한다. 행정인턴 등 한시적 대책으로는 해결이 힘들어 보인다.

▲임 장관=노동부는 명칭을 고용노동부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노사 갈등 조정에서 고용 촉진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취약한 일자리 중계 기능도 전문가를 배치하는 등 강화할 방침이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노동부의 산업인력 양성 업무가 기능인력에만 치우치는 느낌이다. 전문인력,지식 근로자 양성을 위해 지원 기준을 이원화해야 한다.

▲임 장관=인력 정책 틀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일자리 문제에 대해 고민이 많다. 정부 지원 고용정책의 성과를 평가하고 잘되는 정책을 골라 집중하겠다. 체계적 교육이 부족하고 평생 직장이 무너지면서 저부가가치 서비스업 종사자가 늘어나는 양상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휴먼 뉴딜' 정책이 해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