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이 수차례 영상녹화 조사를 벌였다면 국가가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는 11일 부산 모 성당 부설 유치원 학생 A양(8)이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정신적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A양과 부모에게 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8세 여아를 성폭행해 영구 장애를 입힌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측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이 사건 피해자는 후유증으로 몸이 매우 불편한 상태임에도 거듭된 영상녹화 조사 등을 통해 추가 피해를 입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A양 측은 성당 내 주임 신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경찰 측 실수로 녹화 영상이 삭제되자 울산 소재 성폭력피해상담소에서 재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경찰이 상담소장이 무자격자라며 서울로 올라가 조사받을 것을 다시 요구하자 부당한 중복 수사로 정신적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다.

원심 재판부는 "만 6세 이하 아동은 처음 진술이 가장 중요하고 이후 반복되는 진술은 증거로서 신빙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아동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며 "캠코더 조작 실수로 재조사를 벌인 것은 수사기관 잘못이 명백하므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A양의 남매 등을 대상으로 한 무리한 수사와 지연수사,가해자와의 대질신문 등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한 부분은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12일 의원회관에서 법원 · 법무부 · 경찰 관계자,정신과 교수 등과 함께 아동성범죄 진술녹화제 개선 간담회를 갖는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