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은 자신이 새롭게 인수해 경영하던 성지건설이 부도 위기에 직면한 시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박 전 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데에는 성지건설의 자금난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5일 경찰과 업계, 금융권 등에 따르면 성지건설은 4일 거래은행으로 들어온 어음 21억원을 막지 못해 1차 부도 위기에 처했다.

같은 날 오전 7시50분 박 전 회장은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넥타이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채권단은 그러나 성지건설이 박 전 회장의 유고로 일시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보고 1차 부도처리를 하지 않고 기다렸다.

하지만 어음 결제 대금은 5일 오전 9시30분까지 들어오지 않다가 가까스로 입금됐다.

성지건설은 이날 오후에도 만기가 도래하는 어음 29억원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며, 채권단은 성지건설이 제대로 결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는 일시적으로나마 성지건설이 부도 위기에 놓였던 점에서 박 전 회장의 자살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고 박 전 회장은 두산그룹 경영에서 물러난 지 2년7개월 만인 지난해 2월 성지건설을 인수해 경영활동을 재개했으나 회사경영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실제로 박 전 회장은 유서에서 "회사 부채가 너무 많아 경영이 어렵다.

채권 채무 관계를 잘 정리해 달라"는 당부를 했고, 가족과 회사 관계자 등에게는 용서를 구하는 내용을 남겼다.

업계의 한 소식통은 "대기업 총수의 지위를 누리다가 경영계를 떠났던 박 전 회장은 성지건설을 인수하고 운영하면서 명예회복을 꿈꿨을 수 있다"며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악화된 회사의 사정이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안겼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 전 회장의 사인을 자살로 결론짓고 부검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안 희 송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