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72.성지건설 회장)이 4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 유력인사들의 잇따른 자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금껏 재계 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표적인 사례는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자살사건이다.

현대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던 정 회장은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투신자살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정 회장의 죽음은 '대북 불법송금'과 관련해 특검수사를 받은 데 이어 150억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의혹이 새로 불거져 대검 중수부에 3차례에 걸쳐 소환조사를 받은 데다 경영난 등이 겹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듬해 3월11일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에게 인사청탁을 대가로 3천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씨는 사건 당일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좋은 학교 나오신 분이 시골의 별볼일 없는 사람에게 머리 조아리고 돈 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직후 한강에 투신했다.

경제인을 제외한 고위인사로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대표적이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인근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이밖에 2004년에는 뇌물과 인사ㆍ납품 비리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안상영 전 부산시장과 박태영 전남지사, 이준원 파주시장 등이 한달여 간격으로 잇따라 자살했다.

2005년에는 국정원 도청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이 호남대 총장 관사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유력인사들의 이러한 자살사건의 심리적 배경을 권력과 부, 명예가 한순간에 날아가버린 허망함에서 찾는다.

하지만 박용오 전 회장의 죽음은 이보다는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가족에서 배제된 데 따른 충격과 자괴감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보는 시각도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김명언 교수는 "만약 박 전 회장의 죽음이 자살이라면 이는 나머지 형제들과의 관계 악화에 따른 좌절감 탓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박 전 회장은 다른 사람도 아닌 형제들에 의해 자신이 쌓은 것이 다 무너졌다.

모 그룹처럼 형제간 사이가 나빴다면 차라리 나았겠지만 두산가 형제들은 우애가 돈독했기에 더욱 충격이 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형제와 가족으로부터 얻는 마음의 지원과 평안함이 중요한데 전체 가족으로부터 사실상 숙청되면서 입은 자존심의 상처를 회복하는 것이 결국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