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환자까지 처방전 요구…약국엔 약 배포 지연

의사 처방전만 있으면 동네 약국에서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구할 수 있게 된 30일 서울 시내 중소형 병원에는 약을 받으려는 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일선 약국에는 오전이 넘도록 약이 없는 곳이 많아 처방전을 들고 찾아간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 동네병원 '북적' = 이날 오후 오후 2시30분 서울 광진구의 A소아과 의원 대기실에선 주민 10여명이 나란히 앉아 걱정스럽게 약을 받는 절차를 물었다.

이 의원의 원장은 "오전에 독감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 30∼40명이 몰려 6명이 타미플루 처방전을 받아갔다"며 "무작정 타미플루를 복용하면 바이러스 내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당부한 덕분인지 처방전을 억지로 요구하는 사례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성북구 돈암동의 B내과병원 측 관계자는 "독감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너무 늘어 정신이 없다.

원장이 일반 외래환자들과 대화하기 어려울 정도다"며 몰려든 신종플루 환자들로 말미암아 악역을 맡게됐음을 전했다.

타미플루에 대한 홍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탓인지 단순 감기 환자들이 무작정 처방을 요구하는 바람에 의사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종로구 인사동의 C병원 원장은 "오전에 10여명이 타미플루 처방전을 타갔다"며 "갑작스럽게 정책이 발표되면서 무조건 와서 '감기약으로 먹겠다'고 조르는 사례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종로5가의 D병원 측의 관계자도 "단순 감기 증상만으로 타미플루 처방이 어렵다는 점을 환자들에게 계속 설명해야 한다"며 곤혹스러워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자 30일부터 전국 모든 약국에 정부가 비축한 타미플루를 공급한다고 발표했음에도 병원 방문객들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일선 의료기관에서 크고 작은 혼란이 생긴 것이다.

◇ 약국 '아직 약 없어요' = 신종플루 의심증상만 있어도 동네 병원에서 처방전을 떼서 어떤 약국에서든 타미플루를 공짜로 구할 수 있다는 정부 방침과 달리 일반 약국에는 오전 10시 이후에야 겨우 타미플루가 배포되거나, 오후까지 약이 없는 사례가 많았다.

연합뉴스 기자들이 찾은 강남구 약국 2곳은 오전 10시를 넘겨서야 구청 보건소를 통해 타미플루가 배달됐다고 밝혔고, 종로5가의 한 약국도 오후 2시께야 제품이 입고됐다고 전했다.

오후 3시30분이 넘도록 약을 받지 못했다는 종로구의 E약국 약사는 "구청에서 타미플루를 돌리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별 소식이 없다.

약이 없어 환자들이 헛걸음한 사례가 많았다.

정책만 발표하고 실제 집행은 너무 허술하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환자들의 출입이 잦아진 일선 약사들이 신종플루에 대책 없이 노출된다는 지적도 있다.

종로구의 F약국 약사는 "당장 재채기를 하면서 타미플루 처방전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방 접종은 올해 11월20일께나 이뤄진다고 들었다"며 "일선 약사가 병을 퍼뜨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거점 병원은 "부담 덜었다" = 환절기를 맞아 최근 환자가 크게 늘었던 거점 병원들은 이번 조치로 부담이 크게 줄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관계자는 "지난주는 평소보다 3배가 넘는 환자가 진료소를 찾아 검사 등의 절차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며 "환자의 수가 오늘은 크게 줄어 의료진이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건국대 병원도 환자 대기 줄이 눈에 띄게 줄고 긴급하게 치료나 검사를 요구하는 사례가 적어졌다고 밝혔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일반 병원과 거점 병원이 타미플루를 처방하는 기준이 달라, 거점 병원을 찾았다가 동네 의원으로 간 환자들이 혼란을 겪는 경우는 적지 않은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