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정부는 사회복지를 중요한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예산을 투입하여 각종 사업을 벌인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복지정책으로 분류되지 않으면서도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정책 가운데에는 사회복지 추구형 정책이 적지 않다. 대기업과 경쟁에서 여러모로 불리한 중소기업들을 도와주고,해외 농업에 비해 어려움에 처한 국내 농업을 보호하자는 정책이 그렇다. 사용자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노동자들을 보호하자는 노동정책도 마찬가지다.

각종 사회복지형 정책을 두루 뒷받침하는 기조는 정부가 나서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정신이다. 사회복지정책은 그 자체가 기본적으로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조 제공을 목표로 한다. 중소기업,농업,그리고 노동자들은 모두 대기업,제조업,사용자들에 비해 여러 모로 불리한 약자들이다. 약자를 돕는 내용으로 편성되는 산업정책과 노동정책은 그 정책기조가 약자들에게 사회적 보조를 제공하는 사회복지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들이 사업하는 업종에 대기업이 진출하려고 하면 여론은 부정적이다. 실제로 정부는 대기업들이 특정 업종에서 사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얼마 전까지 시행하고 있었다. 공산품 시장은 100% 개방하였지만 쌀과 같은 농산물 시장은 아직도 보호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고용보호법제'는 근로자가 스스로 이직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사용자는 그 노동자가 필요 없어져도 쉽게 해고할 수 없도록 만든다.

사회적 약자를 돕자는 뜻은 숭고한 것이다. 그런데 내세운 뜻이 숭고하다고 해서 그 뜻을 추구하자고 설계한 정책까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는 그 업종이 대기업형으로 바뀌었는데도 대기업의 진출을 막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형 양판점이 늦게 나타난 까닭은 정부가 그 동안 유통부문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하여 대기업의 진출을 막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영세 유통업자들이 인근에 대형 할인마트를 개점하지 못하도록 농성하는 일이 잦다. 사람들이 영세 재래시장을 외면하고 할인마트를 찾는 까닭은 물건을 더 싸게 파는 할인마트가 더 믿음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론은 한편으로는 물건을 믿고 싸게 사기를 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영세 유통업자들의 처지에 동정적이다. 냉혹한 시장은 재래시장을 퇴출시키려 하는데 동정적 민심에 민감한 정치권은 영세 유통업자들을 보호하려 한다.

시장은 대기업 제품을 선호하는데 중소기업정책은 중소기업제품을 사도록 강요하고,시장이 국산 쌀 대신 값싼 외국쌀을 사려 하기 때문에 정부는 쌀시장 개방을 늦추려 안간힘이다. 시장은 불필요하고 생산성 낮은 인력을 해고하도록 신호를 보내지만 고용보호법제는 해고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사회복지지향적 정책들이 시장신호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